마치 은퇴한 운동선수
과거 풀 타워 케이스는 인기 있었습니다. HDD 용량은 많아 봐야 500GB에 불과했죠. 그래서 여러 개를 끼워야 했습니다. CPU는 뜨거웠습니다. 켄츠필드 같은 CPU는 발열이 상당하여 어지간한 쿨러로는 80~90도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크고 무거운 공랭 쿨러를 사용해야 했지요. 지금처럼 일체형 수랭 쿨러 같은 제품은 없었습니다. 여러 개의 저장장치와 큰 공랭 쿨러를 장착할 수 있는 케이스는 풀 타워 케이스뿐이었고, 이 풀 타워 케이스는 과거 하드웨어 마니아들 사이에서 필수품이 되곤 했습니다.
오늘날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반도체 제조사는 끊임없는 연구개발을 통해 기술발전을 이룩하였고, 그 결과 몇 배나 높은 성능 향상을 이루어 내었으며, 발열은 낮추었습니다. 부피는 작지만 강력한 성능을 발휘하는 일체형 수랭 쿨러까지 등장하면서 부피가 큰 공랭 쿨러는 설 자리를 잃게 되었습니다. HDD는 5TB, 10TB 제품이 넘쳐나지만, 사람들은 쉽사리 선택하지 않습니다. 크고 무겁고 시끄러운 HDD를 대체할 수 있는 SSD가 등장했기 때문이지요. 심지어 M.2 제품은 지저분한 케이블도 필요 없습니다. 추가로 클라우드의 보급과 확산이 이루어진 것도 한몫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반도체 기술의 발전, SSD와 클라우드 서비스의 등장, 일체형 수랭 쿨러의 등장 등이 맞물려 이제는 큰 케이스가 필요 없어졌습니다. 심지어 ITX 케이스에서도 2열 수랭 쿨러 장착을 지원하는 제품이 존재할 정도죠. 지난 칼럼에서 소개해드린 NZXT H1 제품의 경우 Intel Core i7-9700KF를 4.7 GHz로 오버클록 한 CPU, NVIDIA 지포스 RTX 2080 8GB FE 그래픽카드, ASUS ROG STRIX Z390-I GAMING 마더보드 구성에서 테스트를 진행하였는데, 상당히 괜찮은 온도를 보여주어 "이제는 ITX를 주 시스템으로 사용해도 되겠구나."라고 생각이 바뀌기도 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은 이상, 더는 개인이 풀 타워 케이스를 쓸 이유가 없습니다. 오늘날에도 풀 타워를 쓰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어쩌면 필요에 의해서가 아닌, 심리적 만족감을 충족하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겠습니다. 아직까지도 풀 타워 제품을 만드는 제조사 역시 분명 나름의 철학이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럼, 이어지는 내용은 글과 사진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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