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나무가 곧게 자라는 건 정직해서가 아니라 더 많은 햇빛을 독차지하기 위해서이며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제가 학생일 때, 새끼 오리 실험에 관한 내용을 본 적 있습니다. 아직 독수리를 본 적 없는 갓 태어난 새끼 오리들에게 맹금류 그림자를 비춰주면 우왕좌왕하며 숨고, 반대로 오리 그림자를 비춰주면 졸졸 따라다닌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독수리에 대해 아무것도 학습한 바가 없는데, 새끼 오리들은 어째서 공포를 느꼈던 걸까요? 당시에는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리처드 도킨스(Clinton Richard Dawkins)의 ≪이기적 유전자 (The Selfish Gene, 1976)≫,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의 ≪사피엔스(Sapiens), 2011≫, ≪호모 데우스(Homo Deus, 2015)≫ 등을 읽고 나서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책에서 말하는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대략 이렇습니다. 오늘날 대부분 사람은 높은 곳에 올라가면 공포를 느낍니다. 뱀이나 거미, 사마귀를 보면 징그러움을 느낍니다. 동물 사체나 배설물 등을 보면 더러움을 느낍니다. 우리는 학습으로 공포와 징그러움, 더러움을 배우기도 하지만 상당 부분은 태어날 때부터 본능적으로 느끼기도 합니다.
제가 어릴 땐 파이리에서 리자드가 되는 걸 진화라고 생각했지만, 진화는 더함이나 개선 따위가 아니었습니다. 진화란 생존에 유리한 유전적 형질을 갖춘 개체가 살아남는 작업입니다. 세대를 거듭하면서 환경에 유리한 조건을 갖춘 개체들은 남고 나머지는 제거하는 작업이지요. 높은 곳에서도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개체들은 생존과 번식에 실패했습니다. 뱀이나 거미를 보고 호기심을 갖거나 귀엽다고 느끼는 개체들도 생존과 번식에 실패했습니다. 부패한 동물 사체를 보며 군침을 흘리고, 배설물을 갖고 놀던 개체는 병들고 감염되어 죽었습니다. 높은 곳을 무서워하고, 물에 들어가는 걸 두려워하고, 지금 우리가 더럽다고 생각하는 걸 피했던 개체만이 생존과 번식에 성공한 겁니다. 그리고 살아남은 개체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게 오늘날 인류입니다. 유전자에겐 의도나 감정이 없기에, 진화는 매우 철저하고 효율적인 '덜어냄 작업'입니다.
미니멀리즘이 위대한 이유는 진화와 닮아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니멀리즘은 본래 단순함을 추구하는 예술 및 문화 사조로 시작했지만, 필요 없는 걸 제거한다는 점에서 진화와 같습니다. 저는 미니멀리즘을 좋아합니다. 일단 시작하면 목표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불필요한 정보를 제거하기에 필요한 정보에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습니다. 제가 동경하는 여피(Yuppie)역시 미니멀리스트가 많았습니다. 군더더기 없이 필수 요소만 갖춘 경제효율에 대한 그들의 신념과 미니멀리즘이 닮아있었기에 그렇지요. 비대하지만 더이상 가치 창출을 못 하는 회사, 경쟁에서 도태된 회사를 해체 하는 건 그들뿐이었습니다. 정부는 고용안정이라는 명목하에 부실 기업을 금전적으로 지원하여 인위적인 좀비 기업들을 만들어냈지만, 마이클 밀켄(Michael Robert Milken)이나 헨리 크래비스(Henry R. Kravis)와 같은 여피(기업 사냥꾼)들은 도태된 기업을 해체하며, 자연의 섭리라고 할 수 있는 '진화'작업을 행했습니다. 그렇게 사회와 경제를 발전시켰지요.
오늘 칼럼으로 소개할 제품은 상당히 미니멀한 제품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무거운 작업을 해야 하거나 헤비 게이머(Core gamer)라고 한다면, 이 제품이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웹서핑과 넷플릭스면 충분한 사람도 있습니다. 단지 송출용 PC가 필요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기존의 크고 무거운 데스크톱은 여러모로 낭비입니다. 필요 없는 건 없애는 게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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