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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년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젠하이저, 그리고 EPOS
1945년 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프리츠 젠하이저 교수는 Lab W(Laboratorium Wennebostel)를 설립합니다. 46년 DM1이라는 마이크를 출시했으며, 57년에는 독일 방송국과 협업하여 무선 마이크로폰 시스템을 선보였습니다. 그리고 58년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Sennheiser electronic으로 사명을 변경합니다. 마이크를 만들던 젠하이저에게 1968년은 아주 기념적인 해입니다. 최초 오픈백 헤드폰인 HD414를 세상에 내놨기 때문인데요. 오픈형이 가지는 의의는 생각보다 더 대단합니다. 밀폐형은 그 나름대로 장점이 존재하긴 합니다만, 일반 생활에서 듣는 소리와 이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오픈형은 이런 단점을 상당히 완화합니다. HD414는 지금까지 1,000만 대 이상 판매했으며,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헤드폰 중 하나입니다. 91년에는 세계 최고의 헤드폰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오르페우스Orpheus HE 90 / HEV 90을 개발했으며, 3대 레퍼런스 헤드폰 중 높은 인기로 인해 가장 오랜 기간 동안 가격을 유지하고 있는 HD600(최근에는 스트리머 풍월량 헤드폰이라고 불리는)을 비롯하여 HD800, HE1 등 수많은 걸작을 내놓으면서 7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는 음향기기 제조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이번 칼럼에서 다룰 제품은 젠하이저가 자랑하는 레퍼런스나 플래그십 헤드폰은 아닙니다. 퀘이사존 커뮤니티 색깔에 조금 더 잘 어울리는 게이밍 헤드셋을 다뤄볼 예정인데요. 그전에 조금 더 분명하게 해둘 부분이 있습니다. 게이밍 헤드셋은 EPOS | Sennheiser라는 명칭으로 브랜드 네이밍이 되어있다는 점에 주목해보겠습니다. 젠하이저는 2003년 덴마크 보청기 회사 Demant A/S와 Sennheiser Communications A/S라는 합작 회사를 설립합니다. 이 회사는 2020년에 합작 투자가 종료되고, 엔터프라이즈와 게이밍 헤드셋 분야는 EPOS로 독립하게 됩니다. Demant A/S 산하에 있는 EPOS는 비즈니스 전문가와 게임 커뮤니티를 위한 장치를 개발 및 판매하는 오디오 회사입니다. 브랜드명인 EPOS는 라틴어와 고대 그리스어에서 파생되었으며, 서사시, 언어, 시를 묘사하는 데 사용된다고 합니다. 오디오를 통해 의사소통 방법을 가능하게 하는 방안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의미한다고 하는군요.
Demant 사장 겸 CEO인 Søren Nielsen은 “EPOS 설립은 오디오 시스템과 프리미엄 사운드 경험을 전문으로 하는 새로운 독립 회사의 시작을 의미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Sennheiser Communications의 유산을 기반으로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피력했다고 볼 수 있는데요. 이번 글에서는 EPOS | Sennheiser GSP 601 하이엔드 밀폐형 헤드셋을 다뤄보겠습니다.
상자 및 포장
흰색과 하늘색 포인트 색상으로 깔끔하게 꾸민 상자는 꽤 튼튼한 편입니다. 어지간한 충격은 상자 선에서 막아줄 수 있는 정도인데요. 내부에는 완충재가 헤드셋을 감싸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배송 중에 제품이 파손될 일은 없을 겁니다. 상자 밑 부분에는 'Sennheiser Original' 스티커가 부착되어 있습니다. 구성품은 헤드셋 본품과 3.5mm 3극 케이블, 3.5mm 4극 케이블, 흰색 커버 플레이트 2개와 각종 문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탈부착 케이블
4극 케이블 길이는 1.5m, 3극 케이블은 2.5m입니다. 최근에는 4극 단자를 지원하는 사운드카드가 많습니다만, 여전히 마더보드는 3극 연결만 지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3극 케이블은 PC 연결을 고려하여 2.5m로 조금 더 길게 제작했으며, 포터블 기기에는 1.5m 케이블을 사용하면 알맞습니다. 케이블은 직조로 마감했는데, 뻣뻣하지 않고 부드럽습니다.
케이블을 연결하는 포트와 케이블 마감 모두 나무랄 데가 없습니다. 특히 연결했을 때 일체감이 매우 뛰어난데요. 케이블 단자가 깊숙하게 들어가서 꺾임 현상 등을 방지하여, 내구성까지 챙겼습니다. 케이블 호환성이 떨어진다는 점만 제외한다면 딱히 단점을 찾기 어렵습니다.
외형 및 특징
GSP 601은 흰색과 검은색, 회색 그리고 청동색을 활용해서 제품을 꾸몄습니다. 4색을 잘못 조합하면 조잡스러워 보일 수 있는데, GSP 601은 잘 어우러지도록 배치를 잘했습니다. 가격대가 어느 정도 있는 제품인 만큼 깐깐하게 살펴봤는데, 마감이 모난 구석은 없었습니다. 이어컵 하우징 왼쪽에는 플립형 마이크가 부착되어 있으며, 내리다 보면 딸깍하고 걸리는 부분이 있는데요. 이 부분을 중심으로 마이크 전원 상태가 바뀝니다. 오른쪽은 볼륨 조절 휠인데, 쉽게 돌아가지 않도록 살짝 뻑뻑하게 설계해뒀습니다. 볼륨이 매우 세밀하게 조절된다는 점이 참 놀라웠습니다.
색상 조화, 전체적인 만듦새, 재질감까지 정말 잘 만든 제품입니다. 다만, 한 가지 호불호가 갈릴 만한 부분이라면 헤드셋 자체 부피가 꽤 크다는 점입니다. 물론, 게이밍 헤드셋은 실내에서 착용할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에 요다 현상 따위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흰색 플레이트 장착
구성품에 추가 플레이트가 한 쌍 있었죠. 이걸 통해서 GSP 601을 다른 느낌으로 꾸밀 수 있습니다. 흰색 플레이트를 장착하면 청동색과는 다른 깔끔함이 강조되는데, 개인적으로는 이쪽이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소비자 취향에 맞게 선택지를 제공한다는 건 분명 장점입니다.
GSP 600 / GSP 602
▲ 왼쪽: GSP 600 / 오른쪽: GSP 602
GSP 6번 시리즈는 총 세 가지 색상이 존재합니다. GSP 600은 검은색과 은색, 빨간색 3색을 활용했고, GSP 602는 남색, 검은색, 회색, 황토색 4색을 사용했습니다. 묵직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을 좋아한다면 GSP 600, 톡톡 튀는 듯한 느낌을 좋아하거나 일반적인 게 싫은 분이라면 GSP 602를 마음에 들어 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깔끔함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단연 GSP 601이겠죠.
착용감
이어 패드
헤드셋 부피가 큰 만큼 이어 패드도 꽤 큽니다. 내부 직경이 세로 7.5cm, 가로 4.5cm 정도라서 귀가 쏙 들어갑니다. 깊이는 2.5cm인데, 일반적인 헤드셋에 비해서 깊습니다. 이로 인해 귀가 헤드셋 하우징에 닿지 않거나, 설령 닿더라도 그 면적이 아주 작은 편입니다. 이어 패드는 총 세 가지 재질로 마감했는데요. 외부는 내구성이 좋은 인조 가죽으로, 내부는 쾌적한 느낌을 줄 수 있는 천 재질로 마감했습니다. 그리고 얼굴에 닿는 부분을 스웨이드 재질로 처리하여 부드러운 느낌을 줍니다. 쿠션감도 좋습니다. GSP 601은 제가 접한 게이밍 헤드셋 중 가장 꼼꼼하게 만든 이어 패드를 제공합니다.
헤드 밴드
헤드 밴드 역시 굉장히 꼼꼼하게 만들었습니다. 쿠션은 천 재질로 마감했으며, 이어 패드와 마찬가지로 푹신합니다. 게다가 머리에 닿는 면적을 최소화하여 정수리가 느끼는 압박감을 최소화했습니다. 그리고 GSP 600 시리즈에는 헤드 밴드에 장력 조절시스템을 적용했습니다. 중간에 있는 구조물을 안쪽으로 모아두면 장력이 강해지고, 양쪽으로 넓혀두면 장력이 약해집니다. 턱선이 좁은 분이라면 구조물을 이어컵과 먼 방향으로 밀어두시면 됩니다. 편한 걸 추구하는 분이라면 바깥쪽으로 밀어두는 게 좋습니다만, 주변 소리 차단과 누음을 막기 위해선 장력을 적절하게 조절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장치를 적용한 제품이 있었나요? 저는 처음 접하는데, 굉장히 유용한 기능이라고 생각합니다.
길이 조절 슬라이드
길이 조절 슬라이드는 한쪽당 5cm, 양쪽을 합치면 10cm 정도 늘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큰 폭으로 바꿀 수 있다는 건 머리 크기로 인한 제약이 덜 할 확률이 높다는 걸 의미합니다. 실제로 GSP 601은 머리가 작은 분뿐만 아니라 큰 분도 문제없이 착용할 수 있습니다.
힌지 / 무게
힌지 2개로 이어컵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어 패드도 크고 깊은 편이고, 장력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얼굴에 완벽히 밀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스위블 기능을 지원하지 않기 때문에 잠시 목에 걸어 둘 때 불편함을 느낄 수는 있겠습니다. 이런 소소한 단점을 제외하면, 착용감은 정말 좋은 편입니다. 무게는 396~397g 정도로 측정되었는데, 유선 헤드셋치고는 무거운 편입니다. 큰 부피와 힌지에 사용한 금속 등으로 인해 무게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형태죠. 그런데 착용해보면 무게보다는 가볍게 느껴집니다. 헤드 밴드에서 무게 분산을 잘해놓은 덕분인 듯한데요. 가볍게 느껴진다고 하더라도 무게 자체가 어디로 가는 건 아니기 때문에 중간중간 헤드셋을 벗고 쉬어줄 필요가 있습니다.
측정치 및 소리 성향
본 테스트에 사용한 제품 측정값은 제품 전체 특성을 대표하지 않습니다.
측정 도구, 샘플, 주변 환경 등 여러 가지 요소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으니 참고 용도로만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헤드폰 측정은 음향기기가 모의 귀를 완벽하게 밀폐하지 못하거나 뜨는 상황이 발생하면, 밴드를 통해 인위적으로 밀착한 후 측정을 진행합니다. 여러 차례 측정하여 가장 평균적인 값을 사용하며, 직접 기기를 청감하여 그래프와 비교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헤드폰이 귀를 완벽하게 밀폐하지 못할 경우 위 그래프와 다른 성향 소리를 들으실 수도 있습니다. 소리에는 정답이 없지만, 모든 정보를 선명하게 듣고 싶은 분들은 전체 대역이 평평한(flat) 특성을 보일수록 좋습니다. 퀘이사존은 리스닝 룸에서 결과를 도출한 올리브-웰티 타깃을 따르는데, 평평한 특성을 보이더라도 저음역이 다소 많다고 느끼는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모든 그래프는 1/3 스무딩을 적용한 상태입니다. 헤드셋 특성을 가장 쉽게 파악할 수 있지만, 세밀한 부분을 들여다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방식입니다. 부족한 부분은 글로 풀어 설명해드리겠습니다.
그래프가 정말 아름답습니다. 게이밍 헤드셋은 저음역이 많아야 한다. 이러한 마케팅 문구 많이 보셨을 겁니다. 이런 헤드셋 대부분은 200Hz 대역이 강조되어 있어서 중음역을 탁하게 만듭니다. 개인적으론 소리가 답답해져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 튜닝인데요. GSP 601은 극저음역부터 100Hz까지만 강조하고 200Hz부턴 아주 플랫하게 튜닝했습니다. 특히 중음역대는 아름답습니다. 다리미로 다려놓은 듯 평평한데, 실제로도 아주 깔끔한 중음역을 구현합니다. 역시 중음역을 다루는 데에는 젠하이저만한 곳이 없습니다. 6kHz 딥으로 인해 7~8kHz 대역이 살짝 강조되는데, 오히려 이 부분이 밀폐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답답함을 어느 정도 해소해 주는 느낌입니다. 밀폐형 특성상 HD600/650 등과 같은 오픈형 헤드폰과 비교한다면 살짝 인위적인 느낌이 있습니다만, 게이밍 헤드셋 중에 이만큼 정교하게 튜닝한 제품은 아주 드물 겁니다. 다만, 젠하이저 특유의 어두운 느낌도 살아 있는데, 이로 인한 호불호가 갈릴 수 있습니다.
마이크
헤드셋은 소리를 구현하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마이크 성능도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마이크 전원 상태를 알려주는 LED 인디케이터와 같은 장치는 없습니다만, 플립형이라서 훨씬 더 직관적입니다. 마이크 중간에 있는 검은색 부분은 유닛을 입 앞에 배치할 수 있도록 구부러지게 설계했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디테일을 놓친 부분이 없습니다. 이 마이크는 단일 지향성 방식으로 목소리보다 주변 소음을 작게 수음합니다. 더불어 녹음 품질이 좋습니다. 왜곡이 거의 느껴지지 않고, 미세 잡음도 신경 쓰이지 않는 수준입니다. 소리가 명료해서 의사 전달용으로는 차고 넘치는 성능입니다. 더 뛰어난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사용하고 싶다면 디스코드 Krisp나 NVIDIA RTX Voice를 활용하면 됩니다.
마치며
지금까지 살펴본 GSP 601은 음향 기기 중에서는 그리 비싼 편이라고 할 수 없지만, 게이밍 기어 시장 기준으로는 고가에 속하는 제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헤드셋은 이름값, 돈값을 톡톡히 해냅니다. 많은 분에게 제품을 소개해드리는 직업을 가진 저로서는 쉽사리 꺼내기 어려운 평가인데요. 지금까지 사용해본 게이밍 헤드셋 중에 손에 꼽을 수 있는 제품이라서 조금은 과감해져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부피가 크고 무겁다는 건 분명 단점입니다. 게다가 USB 인터페이스나 무선 연결을 지원하는 헤드셋처럼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기본기가 탄탄함을 넘어서 게이밍 헤드셋 중 최고 수준입니다. 저음역을 강조한다는 게 어떤 건지 보여주는 듯한 압도적인 튜닝 실력입니다. 중음역 그래프는 다시 봐도 아름답습니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젠하이저의 근본에는 마이크가 있습니다. 오늘날 방송국에서도 젠하이저 마이크를 많이 사용할 정도로 성능은 두말할 필요가 없죠. 그래서 헤드셋 마이크 성능 역시 기대해볼 법했습니다. 녹음 테스트를 진행한 결과 노이즈 억제가 잘 되어 있고, 왜곡 없이 소리를 깔끔하게 수음하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단일 지향성 방식을 활용하여 목소리와 주변 소음을 억제하는 능력도 꽤 좋은 편이고요. 더 뛰어난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원하는 분이라면 소프트웨어를 구동해야겠지만, 하드웨어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능력치는 최대한 끌어냈습니다.
만듦새도 훌륭합니다. 힌지를 철재로 설계해서 내구성을 챙겼고, 헤드 밴드에 장력을 조절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이어 패드는 세 가지 소재를 활용해서 내구성과 착용감을 모두 챙겼습니다. 볼륨 조절 노브가 너무 뻑뻑하지도, 헐겁지도 않으며 음량이 굉장히 세밀하게 조절되는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케이블 단자가 이어컵 내부로 깊숙이 들어가서 일체감 있는 외형과 내구성을 챙긴 부분에서도 디테일을 엿볼 수 있습니다. 너무 칭찬 일색인가요? 그만큼 잘 만들었습니다. 가상 7.1채널 등 부가 기능이 필요한 분들에게는 다소 아쉬울 수도 있겠지만,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는 사운드카드를 보유하고 있으신 분이라면 게이밍 헤드셋은 이 제품으로 종결하시면 됩니다.
이상 QM깜냥이었습니다.
퀘이사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POS | Sennheiser GSP 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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