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알 카포네에게 권력을 주었는가?

마피아 1 출시 전에 살펴보는 금주법 시대

QM중독
54 4007 2020.09.22 18:17


 안녕하세요. QM중독입니다.


 술은 무엇일까요? 단순화하면 에탄올(ethanol)이 섞인 음료지만 또 그렇게 단순한 것만은 아닙니다. 독일의 작가 괴테는 "영원한 것은 맥주뿐!"이라며 찬양했고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와인에 보내는 찬사를 여러 차례 담기도 했죠. 성인으로 추앙받는 아우구스티누스는 "술은 사람을 매료시키는 악마이고 달콤한 독약이며 기분 좋은 죄악이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인류사에 수많은 위인이 술과 관련된 말을 남겼는데요.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술은 항상 곁에 있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기쁜 날은 좋아서 마시고, 슬픈 날은 위로하려 마시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곁들이고, 축하한다고 마시고, 만나서 반갑다고 마시고, 싸우고 화해하며 마십니다. 왜 갑자기 술타령이냐면요. 9월 25일 출시하는 신작 게임, 마피아 데피니티브 에디션 때문입니다. 2002년 PC로 출시한 마피아 1은 술을 헌법으로 금지한 미국의 금주법 시대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게임입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마피아 1의 리메이크작인 마피아: 데피니티브 에디션을 플레이하기에 앞서, 게임을 더욱더 재밌게 즐기기 위해 게임 속 배경이 되는 미국의 금주법 시대와 마피아의 성장에 대해 살펴볼까 합니다. 



마피아 1 리메이크, 마피아: 데피니티브 에디션






유럽의 몰락과 미국의 성장


 1918년 11월 11일, 독일이 휴전에 합의하면서 연합군의 승리로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났지만, 전쟁의 중심지였던 유럽은 엄청난 인명 피해(1,500만 명 추정)와 재산 피해로 빚더미에 앉게 됩니다. 심지어 1918년부터 스페인 독감이 대유행하며 무려 1,700~5,000만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반면 미국은 전쟁 중에는 유럽에 무기와 전쟁 물자를 팔았고, 기반 시설이 대부분 파괴되어 자급자족이 불가능하고 구호물자가 필요했던 유럽은 종전 후 미국의 좋은 시장이 되었죠. 이렇게 미국은 제1차 세계 대전으로 막대한 부를 챙기게 됩니다. 미국이 세계를 주도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지만, 사실상 이때부터 세계의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넘어가며 패권 국가로 성장하게 된 계기를 마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제1차 세계 대전 중 포격으로 폐허가 된 마을 [이미지 출처:위키백과]




 호황기를 맞이한 미국의 이 시기를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라고 칭하기도 하는데요. 지속적인 이민자 유입과 풍족한 자본으로 예술과 문화가 발전하고, 물자들이 대량생산되었으며, 라디오와 자동차(1) 등 당시로는 최첨단 장비가 급격히 대중화됩니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로 매국노들이 들끓어 온 국민이 핍박받을 때, 미국은 라디오 선거 운동을 진행하고, 중산층은 포드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호황을 누리고 있었죠.



(1): 포드자동차를 설립한 헨리 포드는 1913년에 컨베이어 벨트 생산 방식을 만들어 자동차 산업 대량 생산의 표준을 마련했다. 일관된 작업 과정으로 노동 과정을 개편하여 생산성을 증대하는 포드주의(Fordism)는 포드자동차에서 비롯되었다. [이미지 출처: 위키미디어]





금주법 시대 | Prohibition Era

 인류의 기록을 보면 술은 항상 곁에 있었습니다. 문자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술은 인류와 함께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죠. 영국의 식민지에서 시작한 미국 역시 호황기 이전부터 술 소비량이 상당히 높은 국가였습니다.(2) 미국을 독립시켰던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이자 미국 초대 대통령을 역임한 조지 워싱턴은 선거 유세 중에도 사람들이 마실 술을 준비해 두었고 항상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 할 군인들도 술을 보급받았을 정도죠. 미국의 광활한 땅에서 생산되는 엄청난 양의 곡물은 소비, 보관, 운송 등의 이유로 술로 제조되었습니다. 풍부하게 공급되는 술은 당연히 저렴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는 술이 빠지지 않았고, 다양한 이민자의 유입은 세계 각국의 술과 문화가 융합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들은 다시 미국 내에서 개량되고 대량 생산했으며, 또 소비하였습니다. 

(2)2010년 5월 24일 Time 매거진에 의하면 1830년 미국인들은 1주에 평균 1.7병의 독한 술(hard liquor)을 마셨으며 이것은 2010년 평균치의 3배에 달한다.



 한편, 유럽의 종교 단체 및 사회 단체에서 시작된 금주 운동은 세계로 확대되고 있었습니다. 당시 미국 사회 전반에 찌들어 있던 음주 문화는 알코올 중독, 가정 폭력 등으로 표출되었고 음주로 인한 높은 결근율 등 사회 문제로 이어졌습니다. 이로 인해 점차 미국 내에서도 금주 운동이 확대되었는데요. 주류의 제조, 판매, 운송을 금지하는 미국 수정 헌법 제18조(Amendment XVIII)가 1920년 1월 16일 비준되었고, 세부 법률인 볼스테드 법(Volstead Act)에 의해 미국 전체에서 독주를 제조하거나 판매, 운송 등이 금지됩니다. 문제는 독주의 기준이 맹물에 가까운 0.5% 이상의 알코올이 함유된 음료로 규정되었다는 것이죠.(참고로 우리나라 맥주가 약 4.5% 정도의 알코올을 함유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종교 의식 등에 사용된 것을 제외한 모든 주류 판매를 금지한 것입니다.


술을 버리는 오렌지 카운티 보안관의 대리인[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금주법, 마피아를 키우다

 금주법의 시행으로 알코올 소비량 감소 효과가 일시적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그뿐이었죠. 앞서 언급했듯이 당시 미국은 호황기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매일 같이 마시던 이들에게 술을 금지하면 어떻게 될까요? 주머니에 돈은 있고 술은 마시고 싶은데 국가에서 금지하는 상황. 주류 산업은 음지로 숨어들게 되었고 사람들은 많은 돈을 지불해서라도 술을 찾았습니다. 바로 밀주(Moonshine), 법망을 피해 무허가 제조하고 밀수를 통해 술을 들여오게 되죠.(3) 그리고 그 중심에는 마피아가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소비되는 엄청난 양의 밀주를 바탕으로 천문학적인 검은돈을 쥐게 되면서 마피아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3):금주법 시행 이후 첫 번째 회계 연도에 금주법 위반으로 적발된 사건 수는 29,114건으로 증가했다. [출처: 위키백과]



 

'스카페이스' 알 카포네

 미국에서 가장 악명높은 마피아를 꼽으라면 많은 사람이 주저 없이 알 카포네를 선택할 것입니다. 1930년 시카고 트리뷴은 '공공의 적' 리스트 1위로 알 카포네를 선정하기도 했는데요. 금주법으로 성장한 대표적인 마피아이자 마피아 하면 떠오르는 상징적인 인물이 바로 알 카포네입니다. 마피아 게임의 배경이 가장 마피아 규모가 컸던 뉴욕이 아니라 알 카포네가 활동 했던 일리노이주(알 카포네는 시카고, 게임은 가상 도시 로스트 헤븐)인 것을 보면, 알 카포네가 게임 제작에 영향을 주었다고 예상해볼 수 있습니다.


왼쪽 뺨의 긴 흉터로 인해 스카페이스라고 불린 알 카포네(Alphonse Gabriel 'Al' Capone). 역사상 가장 유명한 마피아이다.[이미지 출처:위키미디어]



 알 카포네는 1899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가난한 이탈리아 나폴리 출신 이민자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뉴욕의 '파이브 포인츠' 산하 조직의 갱단원이었고, 17살에 프랭키 예일(Frankie Yale)에게 고용되어 술집에서 일하기도 했습니다. 이 당시 술집에서 여성에게 외설적인 말을 하다 여성의 오빠에게 얼굴을 칼에 베여 긴 흉터가 남게 되는데요. 그로 인해 '스카페이스'라는 별명을 얻게 됩니다. 1919년(당시 19살) 결혼 후에는 건설회사 회계원으로 취직하여 건실하게 살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카고에서 도박과 매춘으로 돈을 벌고 있던 어릴 적 친한 형, 조니 토리오(Johnny Torrio)를 따라 1920년에 시카고로 떠나며 갱단 '시카고 아웃핏'에 합류합니다.

어린 시절에 알았던 알 카포네를 마피아로 키운 결정적 인물, 조니 토리오(Johnny Torrio)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알 카포네가 시카고로 옮기고 때마침 시행된 금주법으로 인해 조니 토리오는 조직의 새로운 수익원으로 주류 밀매 사업을 추진합니다. 뉴욕에서 갱단원 생활도 했고 건설회사 회계원 경력으로 돈 계산도 빨랐던 알 카포네가 두각을 나타내자, 조니 토리오는 알 카포네를 자신의 오른팔로 중용하게 됩니다. 외부적으로 활동을 잘 드러내지 않았던 조니 토리오와 달리 알 카포네는 자신의 행적을 과시하며 그 잔혹함으로 점차 악명을 쌓아가게 됩니다. 밀주 사업의 호황으로 갱단의 몸집을 불린 이들은 1924년, 자신들의 주류 밀수를 원활히 하기 위해 시장 선거에 개입하여 뇌물, 협박 및 납치, 살인하면서 점차 정치권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합니다.

 1924년 경쟁 관계에 있던 노스 사이드 갱단의 딘 오배니언(Dean O'Banion)은 자신의 밀주 공장이 단속될 것이란 사실을 확인한 뒤, 조니 토리오에게 50만 달러에 팔아버리는데요. 이 단속으로 인해 조니 토리오는 경찰에 체포되는 수모를 겪고 공장 대금인 50만 달러도 돌려받지 못했지만, 갱단 사이의 전쟁을 경계한 그는 인내합니다. 하지만 결국 딘 오배니언은 (알 카포네가 17살 일때 술집에 고용해 주었던)프랭키 예일 일당에게 암살당하면서 노스 사이드 갱단과 시카고 아웃핏의 마피아 간 전쟁이 시작됩니다.

딘 오배니언(왼쪽)과 프랭키 예일(오른쪽) [이미지 출처: 위키미디어]



 1925년, 마피아 간 전쟁으로 인해 노스 사이드 갱단에 의해 총상을 입은 조니 토리오는 알 카포네에게 보스 직을 넘기게 됩니다. 외부적으로 조직 활동을 크게 드러내지 않았던 조니 토리오와 달리 알 카포네는 시카고 중심에 있던 호텔로 본거지를 옮긴 후 언론 앞에서는 자신을 사업가로 소개하며 대중을 위하는 척하였습니다. 시민들이 보기에도 그는 가난을 극복하고 성공한 사업가였고 호방한 성격과 언론 플레이, 자선 사업 등으로 대중적인 지지를 받습니다. 하지만 뒤에서는 라이벌 조직원을 무자비하게 처형하고 자신의 밀주를 반입하지 않는 업주를 상대로 폭탄 테러 등을 실행하며 폭력과 위압으로 시카고를 장악하기 시작합니다.

 이 시기 알 카포네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냐면, 기관단총을 지닌 가해자(알 카포네와 그 일당으로 추정)가 일리노이주(시카고는 일리노이주에 속해있다) 검사였던 윌리엄 맥스위긴(William McSwiggin) 및 2인을 살해한 사건(1926년 4월 27일)이 벌어집니다. 이 사건으로 알 카포네는 3개월간 숨어지냈지만, 결국 증거 부족으로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흔히 경찰 영화를 보면 자기 식구가 당하면 이 악물고 잡아넣는 게 일반적일 텐데요. 범죄자를 기소하는 검사가 마피아에게 총살당했음에도 그 누구도 알 카포네에게 죄를 물을 수 없었던 것이죠.

 또한, 어린 시절부터 그를 도왔던 프랭키 예일과 사이가 틀어지자 그를 제거(1928년 7월 1일, 일요일)합니다. 검사를 죽여도 처벌받지 않을 정도로 시카고에서 거칠 것이 없었던 알 카포네는 당연히 증거 불충분으로 구속되지 않았으며, 아무리 친분이 있었던 은인이라도 눈 밖에 나면 여지없이 살해하는 냉혹함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최초로 기관단총(Submachine Gun, SMG)을 사용한 살인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새로 뽑은 링컨 쿠페를 몰고 가다 기관단총과 샷건에 피격되어 사망한 프랭키 예일. 당시 롤스로이스 팬텀이나 메르세데스-벤츠 630과 함께 최고급 럭셔리 자동차로 마피아들이 얼마나 부유했는지 상징적으로 알 수 있다. 참고로 현세대 롤스로이스 팬텀의 가격은 6억 3천만 원부터 시작한다. [링컨 쿠페 예시 이미지 출처:위키백과]



 미국 검찰청은 1927년 기준 알 카포네가 밀주, 도박, 개 경주, 댄스 홀, 매춘, 기타 범죄를 통해 1억 5백만 달러를 벌어들인 것으로 추정했습니다.[수익 출처: 시카고 트리뷴] 이것은 당시 민간인이 1년에 벌어들이는 수익 중 가장 높은 기록이며, 현재 환율로 약 1,221억 원, 100년 전 당시 물가를 반영하면 얼마일지 가늠할 수 조차 없는 천문학적인 액수입입니다. 수익 중 절반 이상이 밀주의 수익이었으며, 다시 이 돈은 정치권과 경찰을 비롯한 공권력까지 매수하면서 시카고에서 그 누구도 알 카포네를 잡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미국인의 술을 금지하는 금주법은 뜻하지 않게 마피아에게 무소불위(無所不爲, 못 할 것이 없음)의 권력을 제공한 것이죠. 


미국의 주요 갱단들이 모여 밀주 유통과 영토 분배를 논의했던 1929년 아틀랜틱 시티 회의에 참석한 알 카포네.
사진을 보면 영화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가 연상되는, 그야말로 마피아 전성시대였다.[이미지 출처:위키백과]



 1929년 2월 14일, 경찰복을 입은 두 사람을 포함한 알 카포네의 조직원이 단속을 나온 것으로 위장하여 라이벌 갱단인 조지 모란의 조직원 6명과 일반인 1명을 벽에 일렬로 세운 후 기관단총으로 70여 발을 난사한 밸런타인데이 학살은 공권력이 무력화되고 범죄조직이 지배하는 당시 미국을 상징하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경찰복을 입고 학살극을 벌여 미국 전역에 알려진 이 사건은 알 카포네를 공공의 적 1위(Public Enemy No. 1)로 올려놓았으며 경쟁 조직원들에게는 두려움을 심어주었고, 이를 계기로 시카고를 넘어 연방 정부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무기 소지 등의 혐의를 적용하여 임시로 잡더라도 여전히 알 카포네를 살인, 납치 같은 중범죄 명목으로 잡을 수 없었습니다. 

경찰복을 입고 검문인 척 노스 사이드 갱원들을 벽에 일렬로 세운 후 톰슨 기관단총으로 70여 발을 난사한 사건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프랭키 예일 살인 사건과 밸런타인데이 학살에 사용된 톰슨 기관단총의 예시 이미지. 평소 과시하기를 좋아했고 같은 총기를, 그것도 흔치 않았던 톰슨 기관단총을 사용한 살인 사건으로 알 카포네 일당이 유력 용의자임을 뒷받침했으나 평생 살인 같은 중범죄로 알 카포네를 잡을 수 없었다. [이미지 출처:위키백과]





대공황

 그런데 누구도 예측 못 한 사건이 벌어집니다. 월스트리트 대폭락이죠. 1929년 10월 24일(검은 목요일)과 10월 29일(검은 화요일)은 미국의 역사상 가장 큰 주식 대폭락으로 이로부터 12년 동안 서구권 전체에 대공황이 시작됩니다.


1929년 10월 29일 검은 화요일 대폭락 직후, 월가에 모인 군중들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호황을 누렸던 미국인의 자산은 순식간에 사라지기 시작했으며, 서민층은 실업자가 되어 거리로 내쫓기게 됩니다. 흥청망청 돈을 썼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빚더미에 앉았고 거리로 내몰렸습니다. 모두가 힘든 대공황 시기에 아이러니하게도 수천 명의 실업자에게 '실직자를 위한 무료 수프 커피 & 도넛' 배급소를 열었던 자선가는 다름 아닌 알 카포네였습니다. 매일 평균 2,200명의 시카고 사람들에게 아침, 점심, 저녁 식사를 제공했으며, 어떤 사람들은 알 카포네를 로빈후드라고 추앙하기도 했습니다. 알 카포네의 잔혹함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시민들에게는 국가가 술을 금지하자 술을 보급했던 사람이고, 경제 대공황으로 춥고 배고플 때 따뜻한 식량을 나눠준 사람인 것이죠. 


매일 2,200명의 실직자를 구원했던 알 카포네의 무료 배급소 [이미지 출처:위키미디어]




공공의 적 no.1이자 잔혹한 마피아 그리고 자선가인 알 카포네는 1930년 TIME 매거진의 표지 모델로 등장하기도 했다.[이미지 출처: 위키미디어]

흥미로운 점은 우유의 냉장 유통과 품질 관리, 유통 기한을 확립시킨 인물도 다른 누구도 아닌 알 카포네다. 금주법이 해제될 기미가 보이자 밀주 대신 사람들이 매일 마시는 우유를 조직의 새로운 돈줄로 만들기 위함이었다. 기존에는 상한 우유도 몸에 좋다며 권장했고 이로 인해 많은 사망자가 속출했던 미국에서, 밀주 유통 방식을 활용하고 정치인에게 뇌물 및 압박하여 우유 유통 기한 법안을 상정했으며 밀주처럼 상인에게 강매하여 시민은 신선한 우유를 마실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1930년 가을, 일리노이주(알 카포네가 활개 쳤던 시카고가 속한 주)의 가상의 도시 로스트 헤븐(Lost Heaven)을 배경으로 마피아 1 데피니티브 에디션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마피아 데피니티브 에디션 트레일러





금주법 시대도 퀘이사존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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