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이상한 그래픽카드들
여러분은 요즘 그래픽카드 디자인이 어떠신가요? 디자인 트렌드에 맞게 대부분 간소하고 네모반듯하며, 튀지 않는 요즘 그래픽카드를 보면 모던 풍의 건축물 미니어처를 보는 듯한 느낌이 납니다. 알고 계신가요? 지금 나와 있는 그래픽카드 이면에는 그래픽카드 제조사의 엄청난 시행착오가 담겨있습니다. 정말 다양한 시도와 실패를 한 끝에 현재의 멋진 그래픽카드가 있는 셈이죠. 엔비디아가 1993년, AMD 라데온의 전신이 되는 ATi가 1985년 창립되었으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그래픽카드가 등장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습니다.
이번에는 잠깐 역사책을 펼쳐서 과거로 돌아가 볼까 합니다. 그래픽카드 제조사가 어떤 시행착오를 거쳤을지, 어떤 그래픽카드가 등장했을 지 말이죠. 물론 모든 제품을 하나하나 열거하자면 정말 역사책 수준이 될 테니 몇 가지 단서를 달겠습니다. 바로 뭔가 특이하고 지금은 물론 옛날 관점으로도 이상한 그래픽카드를 모아봤습니다. 출시하지 않은 프로토타입까지 찾자면 한도 끝도 없을 테니 최대한 출시한 제품들을 선정했습니다. 물론 출시하지 않았음에도 정말 이상하다면 포함되어 있기도 합니다. 준비되셨나요?
1. 태동기(~2007) PROLOG
그래픽카드라는 물건이 등장하고 발전하면서 여러 제조사가 다양한 시도를 해보던 시절입니다. 이 시기에는 GPU 칩을 여러 개 달아 보거나 점점 뜨거워지는 그래픽카드를 위해 쿨링설루션이 발전했습니다. 쿨링 셜루션에 대한 디자인이 확립되지 않은 시기라 그런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감성이 느껴집니다.
이미지 출처: Retro Graphics Cards facebook
대망의 첫 번째 그래픽카드. 2000년 출시한 3dfx의 부두5 5500(위)과 결국 출시되지 못한 부두5 6000(아래)입니다. VSA-100칩을 기반으로 2개 사용하면 5500, 4개(!) 면 6000이 됩니다. 사실상 디자인이랄게 없는 제품이네요. 이렇게 했음에도 성능은 엔비디아 그래픽카드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엔비디아와 박빙의 싸움을 하던 3dfx는 이 시기 자기 스스로 그래픽카드를 만들어 팔겠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실천으로 옮겼고, 결국 망해서 한때 경쟁자였던 엔비디아에 인수되고 맙니다. 출시되지 못한 부두5 6000은 수량마저 적어서 마치 고대 유물 같은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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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출시한 지포스 FX 5950 Ultra. 라데온 9800 시리즈에 정신없이 당하던 엔비디아가 내놓은 마지막 카드지만, 성능은 둘째치고 헤어드라이어를 연상시키는 어이없는 쿨링설루션과 소음으로 유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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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출시한 MSI 지포스 FX 5700 LE입니다. 껍데기로 모자라서 쿨링팬까지 금색입니다. 지금 이렇게 만들었다간 엄청난 비난에 직면하겠지만, 이때는 괜찮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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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출시한 GIGABYTE 지포스 6800 GT Dual. 6800 GT를 기판 1개에 2개 얹고 나서 온도가 걱정되었는지 방열판을 앞뒤, 샌드위치 형태로 기판에 덮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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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출시한 엔비디아 지포스 7950 GX2. 평범한 듀얼 칩 그래픽카드이긴 한데, 레퍼런스 디자인임에도 그래픽카드 1개에 기판이 2장입니다. 기판 1개에 칩을 1개씩 올리고 2개를 묶은 거죠. 엔비디아는 이렇게 기판 2장 쓰는 짓을 2009년까지 이어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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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출시한 VisionTek 라데온 X1650XT Dual. 보통 듀얼 칩 그래픽카드는 최상위 칩을 사용하는데, 이건 메인스트림 칩을 2개 사용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한데, 저렴하게 그래픽카드 1장으로 디스플레이 4개를 쓰기 위해서입니다. 마련된 출력 포트는 DVI가 아닌 DMS-59 포트로 1개당 VGA 2개로 나누어서 디스플레이를 4개 사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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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출시한 JATON VIDEO PX309 QUAD입니다. 한술 더 떠서 엔트리 칩인 HD 3450을 2개 사용했습니다. 이런 걸 만든 이유는 위 그래픽카드와 마찬가지로 디스플레이를 4개 출력하기 위해서입니다. 구멍이 엄청나게 많은 DMS-59 포트가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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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출시한 라데온 X1950 PRO Dual. ATi에서 공식적으로 X1000 시리즈 듀얼 칩 그래픽카드를 만들지 않자, 사파이어에서 자체 제작한 모델입니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지만, 이 당시에는 그래픽카드 제조사가 레퍼런스 없는 듀얼 칩 그래픽카드를 만들어서 팔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 그래픽카드들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2. 성숙기(2008~2009) DEVELOPMENT
본격적으로 듀얼 칩 그래픽카드가 등장하던 시기입니다. 이전에도 듀얼 칩 그래픽카드는 존재했지만, 단발성이나 공식 모델은 아니었는데, 이 시기에는 대부분 공식 모델로 듀얼 칩 그래픽카드가 플래그십으로 출시됩니다. 지포스 9~200 시리즈, 라데온 3000~5000 시리즈 시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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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출시한 지포스 9800 GX2. 지포스 9800 GTX를 2개 사용한 듀얼 칩 그래픽카드인데, 여전히 기판이 2장입니다. 쿨링설루션 1개를 기판 2장이 감싸는 이상한 형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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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출시한 ASUS 라데온 HD 3850M Splendid. 얼핏 보면 평범하고 작은 그래픽카드 같지만, 뒤를 보면 정신이 출타할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힙니다. HD 3850을 노트북용 MXM 기판에 올린 후 이를 다시 PCIe 카드에 연결한 어이없는 구성입니다. ASUS는 이게 재미있었는지 더 이상한 제품을 공개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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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공개된 ASUS 라데온 HD 3850 Trinity. 이건 무려 HD 3850 MXM을 3개 사용한 물건입니다. 트리플 칩 그래픽카드인 셈이죠. 쿨링설루션은 히트파이프와 일체형 수랭이 결합한 하이브리드 방식입니다. 다행히 출시하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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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초에 출시한 라데온 HD 3850 X2와 HD 3870 X2. 위 그래픽카드에 비하면 지극히 평범한 듀얼 칩 그래픽카드입니다.
이미지 출처: bit-tech.net/hisdigital.com
2008년 중순~말에 출시한 라데온 HD 4850 X2, HD 4870 X2 역시 평범한 듀얼 칩 그래픽카드입니다. 여담으로 HD 3850 X2, HD 4850 X2는 레퍼런스 모델이 없고 제조사에서 자체 설계한 그래픽카드만 출시되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newegg.com
2008년 출시한 VisionTek 라데온 HD 4670 X2 QUAD. 자꾸 다중 디스플레이에 욕심내는 VisionTek 제품입니다. 메인스트림 GPU 2개를 사용해서 제품명 대로 쿼드 디스플레이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미치 출처: overclockersclub.com
2009년 출시한 SPARKLE Calibre 지포스 9800 GTX+. Calibre는 스파클의 하이엔드 브랜드로 말 로고가 특징입니다. 이 제품 역시 비범합니다. 쿨링팬 양쪽 끝에 있는 은색 걸쇠를 누르고 들어 올리면 무려 히트싱크 각도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대체 이게 얼마나 쿨링 성능에 영향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당시 평가에도 유니크하다고 되어있으니 얼마나 이상한 기능이었는지는 짐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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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출시한 SPARKLE Calibre 지포스 9800 GT. 측면 구조물은 무려 센서 표시기입니다. 온도, 쿨링팬 속도, 전력을 표시해 준다고 합니다. 요즘 출시되는 측면 디스플레이 그래픽카드의 조상 격인 물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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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출시한 지포스 GTX 295. 둘 다 GTX 295입니다. 처음 출시되었을 때는 왼쪽 이미지처럼 지포스 9800 GX2와 마찬가지로 기판 2장이 쿨링설루션을 샌드위치처럼 덮는 형태였는데, 얼마 후 중앙에 쿨링팬, 양쪽에 GPU를 배치한 싱글 기판 형태로 바뀝니다. 이 구조는 엔비디아 마지막 듀얼 칩 그래픽카드인 TITAN Z까지 이어집니다.
2009년 출시한 ASUS MARS. GTX 295는 GTX 285 풀스펙 칩을 2개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발열을 낮추기 위해 GTX 285에서 클록을 낮춘건 물론이고 메모리 인터페이스까지 깍은 칩을 사용했는데 ASUS MARS는 그냥 풀스펙 GTX 285를 2개 탑재한 괴물입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가로 엄청난 온도와 소음을 얻습니다.
이미지 출처: newegg.com
2009년 출시한 MSI 지포스 GTX 465 Golden Edition. 쿨링설루션이 모조리 반짝반짝 빛나는 금색인데, 그 이유는 재질이 구리이기 때문입니다. 구리는 열전도율이 알루미늄보다 높은 대신 가격이 비쌉니다. GTX 465는 지포스 400 시리즈 중 가장 망했는데, 여기에 이런 럭셔리한 제품을 출시했다는 게 의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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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출시한 GALAXY 지포스 GTX 460. 사진만 봐도 평범하지 않습니다. 쿨링팬 걸쇠를 누르면 위로 들어 올릴 수 있는데, 쿨링팬을 청소하기 쉽도록 하기 위한 구조입니다. 요즘 적용해도 괜찮을 거 같은 유용한 기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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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말에 출시한 라데온 HD 5970. GTX 295가 GTX 285의 많은 부분을 희생해서 나온 데 비해, HD 5970은 HD 5870에서 클록만 낮춰서 출시할 수 있었습니다. 이 시기 엔비디아는 지포스 GTX 480의 출시가 늦어지며 고전하고 있었죠. 그리고 출시한 GTX 480은 화려하게 불타오르게 됩니다.
이미지 출처: hardwarezone.com/newegg.com
각각 2009년, 2010년 출시한 ASUS 라데온 HD 4890/5750 Formula. 이름 그대로 F1 포뮬러 레이싱 차량을 형상화한 쿨러 하우징이 일품인 그래픽카드입니다. 레이징 차 만큼 빠르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요. 개인적인 평가로는 실패입니다.
여기서 놀라시기엔 아직 이릅니다.
진짜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으니까요.
3. 대체 무슨 생각인 거예요(2010~2012) WHAT ARE YOU THINKING?
경쟁이 격화되며 평범한 그래픽카드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너나 할 거 없이 연구소에서 프로토타입으로나 존재할 법한 이상한 그래픽카드를 마구 출시하던 시기입니다. 굉장히 재미있는 때였죠. 지포스 200~500 시리즈, 라데온 5000~7000 시리즈 시절입니다.
이미지 출처: vccollection.ru
2010년 출시한 EVGA 지포스 GTX 275 PhysX Edition입니다. 얼핏 보면 평범한 GTX 295 같지만, 안을 까보면 웃음이 나올 지경입니다. 오른쪽에 거대한 GTX 275, 왼쪽에 작은 GTS 250이 붙어있습니다. GTX 275를 메인으로 쓰고 GTS 250은 물리 연산 기술인 PhysX용으로 쓰라는 거죠. 제품 이미지에서 짐작하셨겠지만, 당시 배트맨 시리즈를 비롯한 다양한 PhysX 지원 게임이 출시되었는데 이를 위한 변태 같은 제품입니다. 당시에는 메인으로 성능 좋은 카드를 쓰고 PhysX용으로 메인스트림 카드를 따로 장착하는 사람이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이미지 출처: nvidia.com
2010년 출시한 NVIDIA 지포스 GTX 480 레퍼런스. 사실상 거대한 쿨링셜루션이 탑재된 그래픽카드가 갑자기 많아지게 된 원흉입니다. 엄청난 발매 지연과 적은 물량, 그 어떤 문제보다 컸던 소비전력과 온도가 충격적이었던 여러모로 뇌리에 강하게 각인된 제품입니다. 시스템 내부 공기를 밖으로 내보내는 블로어 구조임에도 히트싱크가 외부로 돌출된 어이없는 설계로 저 위에서 요리를 해보겠다는 다양한 조롱 이미지가 퍼진 걸로 유명합니다. 아래처럼요.
이때도 황회장, 젊어보임
이미지 출처: bit-tech.net
2010년 출시한 ASUS ARES. 앞서 라데온 HD 5970이 HD 5870 칩에서 클록만 낮췄다고 했는데, ARES는 그냥 풀스펙 HD 5870을 2개 탑재한 물건입니다. 밝게 빛나는 구리 방열판이 인상적이군요. 1~2개의 샘플 수준이 아닌 정식으로 한국에 유통된 첫 번째 ASUS 플래그십 듀얼 칩 그래픽카드이기도 합니다. 그래봤자 전 세계 1,000대 한정 판매였으니 수량은 수십 개 단위였을 겁니다.
이미지 출처: pcpop.com
2010년 출시한 KFA2 지포스 GTX 460 WHDI. KFA2는 HOF 시리즈로 유명한 갤럭시의 유럽 브랜드입니다. 그래픽카드에 대체 왜 안테나가 있는고 하니, 무려 무선 영상 전송 기술인 WHDI로 1080p 해상도를 무선으로 쏴줍니다. 무선 영상 전송이라는 신기한 기능을 지원했지만, 후속 제품이 출시되지 않은 걸 보면 일반 소비자 용으로는 실패했나 봅니다.
이미지 출처: newegg.com
2010년 출시한 GALAXY 지포스 GTX 580 MDT X4입니다. 이 시기 주력 출력 포트는 DVI였는데, DVI를 과감히 빼고 DP 1개와 mini HDMI 3개로 쿼드 디스플레이를 사용할 수 있게 만든 제품입니다. 이 그래픽카드의 디자인을 다듬고 기판을 흰색으로 바꾼 제품이 GTX 680 HOF, GTX 770 HOF가 됩니다.
이미지 출처: vccollection.ru
2010년 출시한 VisionTek 라데온 HD 5770 Killer. 지금도 이어지는 게이밍 네트워크 브랜드, Killer 랜이 그래픽카드와 결합한 이상한 물건입니다. 네트워크 칩을 위한 메모리까지 보이는군요. 랜 칩이 PCIe 레인 1개를 잡아먹으면서 그래픽카드는 8배로 작동합니다. VisionTek이 출시한 이상한 그래픽카드 시리즈의 마지막 모델입니다.
이미지 출처: pcper.com
이미지 출처: evga.com
2011년 출시한 EVGA 지포스 GTX 460 2WIN. 지포스 그래픽카드 깎는 장인, EVGA가 출시한 듀얼 칩 GTX 460입니다. SLI를 사용해서 GTX 580보다 성능이 높다고 광고했습니다. GTX 480과 그 칩을 사용한 GTX 470, 465는 화려하게 불타버렸지만, GTX 460은 성공하면서 EVGA는 그 칩을 2개 사용한 이상한 제품을 출시하고 맙니다.
이미지 출처: vccollection.ru
2011년 출시한 ASUS MARS II. GTX 580 칩을 풀스펙으로 2개 탑재하는 거로 모자라서 조금 더 오버클록한 듀얼 칩 그래픽카드입니다. 120 mm 쿨링팬 2개를 그대로 올려서 길이 330 mm에 3슬롯을 차지합니다. 현재 출시되는 RTX 4090 크기에 뒤지지 않는 놈입니다. 지금 같았으면 어느 정도 익숙한 크기였겠지만, 출시 연도를 다시 확인해 보세요. 무려 12년 전에 출시된 물건입니다. 참고로 저도 한 개 가지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techpowerup.com
2011년 출시한 Colorful 지포스 GTX 560 Ti Kudan. 쿠단 시리즈의 첫 번째 모델입니다. 다양한 프로토타입이 있었지만, 일반 소비자용으로 출시한 건 GTX 560 Ti Kudan이 최초입니다. 대체 왜 GTX 580이 아닌 메인스트림 칩인 GTX 560 Ti를 사용했는지 당시에도 많은 의문이 있었습니다. GTX 560 Ti에는 너무 과한 전원부와 심지에 기판 뒤에 보조 전원부 카드를 설치할 수 있었고, 에어 키트라고 불리는 방열판을 끼울 수 있는... 과한 제품입니다. 독특한 구성품으로 컬러 물감과 붓을 줍니다. '컬러풀'답네요.
이미지 출처: evga.com
2011년 출시한 EVGA 지포스 GTX 560 Ti 2WIN. GTX 560 Ti 칩을 2개 사용해서 GTX 580보다 높은 성능이라고 GTX '585'라는 이름으로 광고했습니다. 이렇게 재미있는 지포스 그래픽카드를 자주 출시하던 EVGA에 대한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오고 있는데, EVGA 팬으로서 슬픕니다.
이미지 출처: vmodtech.com
2011년 출시한 SPARKLE Calibre 지포스 GT 520. 앞서 Calibre는 스파클의 하이엔드 브랜드라고 했는데 이걸 엔트리 그래픽카드에 붙여 놨습니다. LP 타입 크기에다가 럭셔리한 무광 검정과 은색 로고, 백플레이트를 적용했습니다. 제품 등급에 맞지 않는 어이없을 정도로 잘 만든 외형이 일품입니다. 스파클은 이 짓을 GT 610까지 지속했고, 혹자는 '외형은 10점 성능은 0점'이라는 가혹한 평가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여담으로 Calibre 브랜드는 GTX 680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출시하지 않고 회사까지 사라졌나 했지만, 최근 인텔 아크 그래픽카드 신제품을 공개하며 생존해 있음을 알렸습니다.
이미지 출처: techspot.com/nvidia.com
2011년 출시한 라데온 HD 6990과 2012년 출시한 지포스 GTX 690. 공교롭게도 양사 모두 중앙에 쿨링팬, 기판 양쪽에 GPU 칩을 올린 구조입니다. 지포스 GTX 690은 GTX 900 시리즈까지 이어지는 마그네슘 합금 재질 하우징과 쿨링팬 위쪽이 투명하게 보이는 디자인을 처음으로 사용한 제품입니다. 측면에는 녹색 LED가 점등합니다.
이미지 출처: guru3d.com
2012년 출시한 GIGABYTE 지포스 GTX 680 WINDFORCE 5X. 얼핏 보면 쿨링팬이 없어 보이는데, 옆면을 보면 작은 40 mm 쿨링팬 5개가 줄지어 서 있습니다. 그래서 이름이 5X... 요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지만, 이건 당시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걸 만들었을까요?
이미지 출처: tweaktown.com
2012년 출시한 MSI 라데온 HD 7770/7750 Power Edition. 얼핏 보면 평범한 싱글팬 그래픽카드 같지만, 페이크입니다. 구성품으로 쿨링팬을 1개 더 주는데, 이걸 쿨링팬 위에 적층... 하거나 하우징을 옆으로 밀고 설치해서 듀얼 쿨링팬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videocardz.com
2012년 출시한 Manli 지포스 GTX 680 Ultimate입니다. 기본적으로 평범한 GTX 680이지만, 디자인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입니다. 충격이란 말로도 부족하겠네요. 그래픽카드 외형 디자이너가 없거나 태업을 한 건 아닐까 의심될 지경입니다. 글을 읽는 분들의 정신 건강을 위해 뺄까 했지만, 이런 것도 있었다는 정보를 전달해 드리고자 위험을 무릅쓰고 첨부합니다. 이걸 보면 최근 만리 그래픽카드 디자인은 상당히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이미지 출처: zol.com
2012년 출시한 GALAXY 지포스 GT 610. 평범한 엔트리 등급 팬리스 그래픽카드 같은데, 디자인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비늘 모양과 눈까지 영락없는 물고기입니다. 한국에서는 같은 디자인의 GT 730이 '노량진'이라는 이름으로 출시되었습니다. 위 사진의 은색 버전뿐 아니라 파랑색, 녹색 버전 같은 컬러 바리에이션까지 있었습니다.
이상한 그래픽카드들의 마지막 전성기입니다.
이제부터 그래픽카드는 모던 시대로 돌입합니다.
4. 쇠퇴기(2013~) DECLINE
SLI나 크로스파이어 같은 멀티 GPU 기술을 사용하는 게임 수가 줄어들면서 플래그십 모델이 싱글 칩 제품으로 바뀌던 시기입니다. 이때를 기점으로 기교를 부리는 재미있는 그래픽카드는 자취를 감추고 디자인과 쿨링설루션 성능에 집중하게 됩니다.
이미지 출처: karatebih.ba
2013년 출시한 GAINWARD 지포스 GTX 780 Ti Phantom. 일반적인 그래픽카드는 쿨링팬-히트싱크-기판 구조인데, 이 시기의 게인워드 팬텀은 히트싱크-쿨링팬-기판 구조로 쿨링팬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구조는 500 시리즈부터 사용했는데, 700 시리즈 때는 좀 더 가다듬어서 쿨링팬을 분리해서 청소할 수 있는 편의성을 제공했습니다. 요즘 팬텀 시리즈 그래픽카드는 다시 평범한 구조를 사용하고 있어서 약간 아쉽군요.
이미지 출처: techspot.com
이미지 출처: asus.com
2013년 출시한 ASUS ARES II. 라데온 HD 7970 2개를 오버클록 해서 일체형 수랭쿨러와 조합한 굉장한 물건입니다. 이때까지 라데온 그래픽카드는 공랭 쿨러를 고집하고 있었는데, ARES II에 영향을 받은 건지 AMD는 레퍼런스 제품까지 일체형 수랭쿨러를 도입하게 됩니다.
이미지 출처: overclockers.ua
2013년 출시한 ASUS 지포스 GTX 760 MARS. 그동안 MARS는 빅 칩 2개를 사용했는데, GTX 760 MARS는 커팅된 메인스트림 칩을 사용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전 세대인 GTX 690보다 못 한 성능이 되고 말았죠. 컴퓨텍스에서 GTX 680을 기반으로 한 MARS가 공개되기도 했는데, 정작 출시하지는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출시한 MARS 그래픽카드입니다.
이미지 출처: vccollection.ru
2014년 출시한 ASUS ARES III. 라데온 R9 290X를 2개 사용한 마지막 ARES입니다. 그 뜨겁디뜨거운 R9 290X 2개를 위해 커스텀 수랭 블록을 탑재하고 출시했습니다. 즉, 이 그래픽카드를 쓰기 위해서는 큰돈을 들여 커스텀 수랭 구성을 해야 합니다. 멀티 GPU 기술이 사장된 현재를 생각하면 아마 다시는 출시될 일이 없을겁니다. 상당히 아쉽군요.
이미지 출처: hisdigital.com
이미지 출처: amd.com
2014년 출시한 라데온 R9 295X2, 2015년 출시한 Fury X, 2016년 출시한 Pro Duo입니다. 모두 레퍼런스 디자인임에도 일체형 수랭쿨러를 사용했습니다. AMD는 일체형 수랭쿨러를 레퍼런스에서 쓰는 게 괜찮았다고 생각했는지, 이후 Vega 64에도 수랭 버전을 내놓았고, 가장 최근에는 RX 6900 XT LC라는 수랭 버전을 출시하기도 했습니다.
이미지 출처: nvidia.com
2014년 출시한 엔비디아의 마지막 일반 소비자용 듀얼 칩 그래픽카드, 지포스 TITAN Z입니다. AMD 라데온 295X2가 일체형 수랭쿨러로 발열을 어느 정도 억제한 데 비해 TITAN Z는 그냥 공랭 쿨러를 사용하기 위해 TITAN Black의 클록을 엄청나게 낮춘 칩을 사용합니다. 심지어 칩은 2개 사용했는데 가격은 3배라서 무슨 생각으로 출시했는지 알 수 없는 제품입니다.
이미지 출처: gigabyte.com
2015년 출시한 GIGABYTE 지포스 GTX 980 WINDFORCE X3. 지포스 GTX 980 3개에 일체형 수랭쿨러를 설치하고 그걸 한 번에 쓰는 3-Way SLI 그래픽카드입니다. 상자 하나에 하이엔드 그래픽카드가 3개 들어가 있고 케이스 위에 라디에이터와 쿨링팬을 올리는 일반인이 상상도 하기 어려운 구성입니다. 심지어 패키지는 여행용 캐리어입니다. 한국에서 380만 원 정도에 출시되었습니다. 최신 플래그십 그래픽카드인 RTX 4090이 200만 원 초 중반대인 걸 고려하면 하이엔드 그래픽카드 3개 가격치고는 저렴하게 느껴지는군요.
끝에 Fin
맺음말 CONCLUSION
제가 준비한 그래픽카드는 여기까지입니다. 하드웨어에 대한 관심을 최근에 가지셨다면 역사책을 읽는 듯한 재미를, 옛날부터 써오셨다면 추억을 되살리는 기회가 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사실 지금 관점으로 이상한 그래픽카드는 더 많지만, 그중 극히 일부만 선정하여 소개했습니다. 위에 있는 그래픽카드를 직접 사용해 보신 분도 계실 테고, 더 이상한 제품을 써본 분도 있을 겁니다.
이 기사의 끝은 여기가 아닙니다.
댓글로 직접 써보셨거나 기억나는 제품을 적어주신다면 길이는 더 길어지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