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번째는 게이밍 음향 분야 성숙도에 기여하고 싶다는 의지가 있습니다. 주제넘은 목표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퀘이사존은 한국 PC 시장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위치에 이름표를 붙였습니다. 시대를 풍미했던 PC 하드웨어 커뮤니티가 몇몇 컴포넌트의 발전을 이끌었듯, 퀘이사존 또한 변화를 끌어내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수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언제나 게이밍 음향 시장이 불만이었습니다. 기본도 지키지 않는 제품에 RGB 조명과 마케팅 용어만 바르면 어떻게든 판매가 되는 세태가 이상했습니다. 아무리 봐도 싼 게 비지떡이라는 속담이 딱 들어맞는 제품들이었는데, 저렴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가성비가 좋다는 평을 듣고 있었으니까요. 그 결과 시장은 하향 평준화의 길을 걷게 됐고, 음향 전문 커뮤니티에서는 게이밍 헤드셋을 음향 기기로 취급하지 않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이 간극을 퀘이사존이 메워보면 어떨까? 어려운 문제에 접근이라도 해보기 위해선 GRAS 45CA-10 이어 시뮬레이터와 Audio Precision APx517B 분석기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 오디오 측정 장비를 도입하면서 바랐던 이상
▲ 출처: EPOS

▲ 출처: RAZER
쓴소리를 시작한 김에 조금 더 과감하게 글을 이어가 보자면, 현시점에서 게이밍 헤드셋을 분석할 때 GRAS 45CA-10 이어 시뮬레이터는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라고 표현해도 과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설계·생산 단계에서 이어 시뮬레이터와 오디오 분석기를 구비하고 있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그 몇몇 업체도 장비를 구비한 게 얼마 되지 않은 걸로 알고 있는데, 긍정적인 건 장비를 도입한 뒤로 급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겁니다. 이 지점에서 확신이 생겼습니다. '다른 게이밍 기어 제조사도 측정을 통해 제품을 만들게 해야 한다.' 과학적으로 제품을 분석하기 시작하면 어쩔 수 없이 그들도 기조를 바꾸지 않을까요? 마치 오래전 파워서플라이 시장처럼 말이죠.
□ 처음부터 APx555B를 도입하지 않았던 이유
장비를 도입했을 때 음향에 관심이 많은 몇몇 회원분께 'Audio Precision APx525B나 555B를 왜 구비하지 않은 거냐?'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여기에도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비용적인 측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APx517B는 오디오 분석기, 전력 증폭기, 헤드폰 증폭기 및 마이크 전원 공급 장치와 옵션 디지털 인터페이스를 결합했습니다. 본래 Audio Precision 장비는 분석기를 기반으로 APx1701 트랜스듀서 인터페이스와 기타 모듈을 추가해야 온전하게 장비를 운용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번거로움을 해결함과 동시에 비용 절감을 이뤄낸 게 바로 Audio Precision의 최신 장비, APx517B였던 겁니다. 당시에는 GRAS 이어 시뮬레이터도 함께 구비해야 해서 최대한 합리적인 장치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두 번째로는 APx525B 혹은 APx555B는 앞서 언급한 목표를 이루기 위한 필수 장비가 아니었습니다. PC와 함께 활용하는 헤드셋은 이미 USB 인터페이스를 활용하거나 무선으로 넘어가는 추세였기 때문에 DAC, 앰프, DAP 등을 분석할 일이 거의 없을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이미 PC 시장에선 사운드 카드가 더 이상 필수품이 아니게 됐고, Creative 정도를 제외하면 신제품을 적극적으로 출시하는 기업도 없는 실정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도입 당시 자문을 구했던 차세대 음향산업 지원센터(NSSC)를 통해 얻은 결론이라서 필요한 장비는 다 갖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1년이 조금 넘어가는 이 시점에 저희는 Audio Precision이 제안하는 제품 중 최상위 모델, APx555B를 구비하기로 한 겁니다. 홀리!
□ 새로운 장비는 왜 도입하는 건가?

APx517B + GRAS 이어 시뮬레이터 도입 때와는 다르게 APx555B 도입 시작점에는 제 의지가 투영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최종 목표가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알지는 못합니다만, 이 장비로 할 수 있는 건 정해져있습니다. 저는 그간 퀘이사존이 다루지 않았던(혹은 못했던) 영역에 발을 담근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보는데요. 단기적으로는 먹거리를 찾아 나서는 것일 테고, 장기적으로는 새로운 문화를 PC 하드웨어를 사랑하는 분들과 공유하며 커뮤니티가 활발해지는 모습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QM지름도 저와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을 거로 생각합니다. 최근 들어 음향 전문 기업들과 소통이 늘어나는 등 긍정적인 신호가 이어지는 중이니, 불씨를 잘 살려봐야겠죠.
▷ APx525B 대신 APx555B를 선택한 이유
시중에서 구매할 수 있는 제품들은 사실 APx525B로 대부분 측정할 수 있습니다. 가격을 고려했을 때 약 반절 정도 저렴하니 어찌 보면 가장 합리적인 선택지였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최고 장비가 아니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첫 번째로 최근 들어 APx555B로 측정할 수 있는 범위 끝에 도달한 제품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제품을 APx525B로 측정한다면 디바이스가 아닌 APx525B 성능을 보게 되는 겁니다. 흔한 일은 아닐 테지만, 장비 성능으로 인해 잘못된 결과 전달 가능성을 차단하고 싶었습니다.

APx555는 -120dB의 일반적인 잔여 THD+N과 1 MHz 이상의 대역폭으로 구형 2700 시리즈 분석기보다 5 dB 향상된 성능을 제공합니다. 반면에 APx525B는 SYS-2722보다 성능이 뒤처지는 특성을 보입니다. 이 지점에서 더 깊은 고민에 빠졌고, 결국에는 중복 투자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해 논하다 보니 APx555B를 선택하게 된 겁니다. 현시점 최고 스펙을 자랑하는 장비로, 당분간은 기계로 인한 문제는 없을 겁니다. 남은 건 휴먼 에러일 텐데,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고 신중을 다해 테스트를 진행해야겠죠. 안 그래도 무거웠던 어깨에 또 다른 짐이 올려지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순 없지만, 뭐 어쩌겠습니까? 도망칠 수 없다면 받아들이고 즐기는 수밖에요.
▷ INPUT & OUTPUT 
  
아날로그 연결은 밸런스드와 언밸런스드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밸런스드 연결은 주로 XLR, 언밸런스드는 BNC를 활용하게 될 겁니다. 일반 음향기기라면 밸런스드는 4.4 mm, 언밸런스드는 3.5 mm를 주로 활용하기 때문에 다소 생소할 수 있는데, 규격이 다를 뿐 원리는 같다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디지털 인풋 & 아웃풋을 위한 모듈로 기본으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원 버튼이 뒷면에 있는 APx517B와 다르게 APx555B는 앞에 있습니다. AP 로고에 흰색 LED도 점등하는군요. 별거 아닌 거 같았는데 기계를 켜고 끌 때 편의성이 체감될 정도로 좋습니다. 아! APx517B가 불편한 건가...?
□ 함께 도입한 장비▷ AUX-0025(Switching Amplifier Measurement Filter) 
최근 들어 앰프 제조사들은 비용 절감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스위칭 설계(Class-D 혹은 스위치 모드)를 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전력 소모가 작다는 점, 크기를 작게 설계할 수 있다는 장점은 요즘 시대와 잘 어울리는 특징들입니다. 그런데 이 설계를 택한 장비들은 측정 시 새로운 과제를 부여합니다.
스위칭 프로세스는 오디오 출력 신호에 스위칭 주파수에서 빠르게 상승하는 에지를 추가합니다. 이러한 빠른 에지는 일반적인 부하(이어폰, 헤드폰, 스피커 등)에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측정 기기에는 어려운 신호를 제공합니다. 빠른 스위칭 에지는 높은 에너지 함량을 나타내며 대부분의 측정 기기의 입력 스테이지에 전달될 때 슬루율slew rate* 제한을 유발합니다. 이러한 빠른 에지에 의해 스트레스를 받으면 분석기 입력 증폭기는 일반적으로 슬루율 제한이 발생하고 정상 모드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없게 됩니다. 자동 범위 지정이 영향을 받고 테스트 중인 신호가 다음 측정 회로로 잘못 전달됩니다. 그 결과 거의 모든 분석기에서 프리컨디셔닝 없이 스위칭 앰프의 노이즈 및 왜곡을 측정하면 부정확하고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얻게 될 확률이 높아집니다.
*slew rate: 이론적으로는 입력 전압의 펄스와 출력 전압의 펄스가 일치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실제 오디오의 증폭기에서는 응답 특성에 따라 최대 전압에 도달되기까지 시간 지연이 발생합니다. 이때 리니어 구간에서의 출력되는 전압의 변위와 도달하는 시간의 변위 비율을 수치적으로 나타낸 것이 슬루율입니다.
더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인간이 들을 수 없는 초고역대에서 왜곡이 발생합니다. 이 왜곡은 사람이 소리를 인식하는 데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만, 측정에는 영향을 미쳐 부정확한 결과를 도출하게 된다고 이해하셔도 좋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분석기에 신호를 전달하기 전에 신호를 프리컨디셔닝(예비 조정)하는 겁니다. 이를 수행하는 방법으로는 기본 오디오 신호는 그대로 통과시키면서 빠른 에지를 부드럽게 하는 로우 패스 필터 활용이 있습니다. 이 필터에 대한 가장 좋은 접근 방식은 패시브 설계입니다. 빠른 에지를 적절히 처리하고 상대적으로 비용이 저렴하며 전력이 필요하지 않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잘 설계한 패시브 필터는 액티브 필터처럼 노이즈나 왜곡을 추가하여 필터를 통과하는 오디오 신호 품질을 저하시키지 않습니다.
저희는 Audio Precision이 제안하는 2채널 패시브 필터인 AUX-0025를 선택했습니다. 이것도 비용이 마냥 저렴한 건 아니지만, 본품 가격을 고려하면 저렴한 편이라는 표현이 틀린 건 아닙니다. 이 장비는 APx555B 분석기와 Class-D 설계 디바이스 사이에 위치하게 됩니다.
▷ LTV-1(A/V Sync Test)
퀘이사존은 A/V 딜레이 테스트를 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해왔습니다. 첫 번째 방법으로는 측정 마이크와 게임을 활용하여 초고속 촬영을 하는 거였습니다. 이 방법은 가장 직관적이고 정확한 테스트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우스/키보드 딜레이 테스트와는 다르게 블루투스 연결을 했을 때 딜레이가 평균 200 중반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프레임 단위로 숫자를 세며 종합해야 하는 단계에서 효율성이 좋지 못했습니다. 평균값을 내려면 최소 20~30번 정도를 확인해야 한다는 점에서 더더욱 채택하기가 어려운 방식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아두이노 키트를 활용한 방법이었습니다. 틈날 때마다 부품(센서)을 구하고 코드를 짜며 테스트를 진행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두 가지 문제가 있어서 도입하지 못했는데요. 센서 내구성과 테스트마다 발생하는 오차로 인해 최종적으로 콘텐츠에 녹여내기가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다시 첫 번째로 고안한 방법으로 돌아가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을 때(사실, 이미 콘텐츠에 QM코리가 녹여낸 적이 있긴 합니다.) 즈음 APx555B를 도입하게 됐고, 동시에 LTV-1이라는 도구를 구비해 봤습니다.
  
LTV-1은 빛 에너지를 전압 펄스로 변환하는 장비입니다. 흡입 컵 중앙에 장착된 광전압 변환기가 비디오 화면에 점등하는 흰색 플래시를 인지합니다. 그 빛 신호를 오디오 분석기 또는 오실로스코프에서 획득할 수 있는 전압 펄스로 변환하는 원리입니다. LTV-1은 APx500 시리즈 분석기 한 채널에 연결합니다. 그리고 남은 채널에 연결한 마이크(이어 시뮬레이터)가 소리를 감지하는데요. 전압 펄스로 전환된 빛 신호와 소리 신호 간 시간 차를 계산합니다. 이는 Dolby와 DTS 라이선스 사용자 규정 준수 요구 사항의 일부인 A/V 동기화 테스트를 충족하는 방법으로, LTV-1과 APx500 조합은 라이선스 소유자가 아니더라도 테스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물론, 두 장비를 구비할 때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아무튼 해당 장비를 통한 첫 번째 테스트 결과는 Sennheiser Accentum을 통해 공개했습니다.[바로 가기]
맺음말 CLOSING REMARKS
■ 이어폰 / 헤드폰 측정 vs. DAC / 앰프 / DAP 측정 저는 헤드폰 측정 결과를 첨부할 때 개인적인 해석을 덧붙이긴 해도, 의도적으로 좋다 나쁘다로 구분하지 않으려 합니다. 취향뿐만 아니라 이론상 좋지 못한 결과라 할지라도 누군가는 좋게 평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물론, 요즘 독자들은 좋다 혹은 나쁘다로 요약해 주길 원한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렇게 글을 쓸 일은 없을 겁니다. 음향 기기를 즐기고 평가하는 방법은 결코 이분법으로 나눌 수 없다는 게 오랫동안 가져온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DAC, 앰프, DAP 등은 주요 측정 항목을 수치화하기 때문에 시원시원한 맛이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이어폰, 헤드폰보다 더 까다로운 면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 까다로운 면은 테스터 입장에서 더 크게 와닿을 수밖에 없는데요. 측정 항목 자체가 생소할 뿐만 아니라 임피던스와 같이 경우의 수가 곳곳에 존재합니다. 특히, 소스 기기는 단자가 다양해서 그에 맞는 케이블을 제작해야 하는데, 저는 이 과정부터 머리카락이 다 빠져버릴 것만 같은 피곤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도움 주신 분들 정말 고맙습니다. 진심입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측정 방법은 안정화가 될 때까지 장비와 테스트 방법을 보완해 나갈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골치 아픈데 또 재미있기도 하네요. 여러분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 보다 보면 익숙해질 겁니다. 아마도... 가장 좋은 건 각 측정치에 대한 내용을 공부한 뒤 유기적으로 연결하며 받아들이는 거지만, 우리에겐 그럴만한 시간과 여유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자료 읽는 걸 포기해야 하나? 그건 또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당장에는 이해가 어려운 리뷰라 할지라도 새로운 글이 등록될 때마다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데이터가 쌓일 겁니다. 그러면 어렴풋하게 어떤 게 좋고 나쁜 건지 분별할 수 있는 정도까지는 도달할 수 있을 텐데요. 그때 각 측정치가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짚고 넘어간다면 비어 있던 퍼즐 조각이 맞춰지며 큰 그림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러한 순간을 맞이한다면 저희가 제공하는 자료뿐만 아니라 해외 자료를 참고할 수 있게 됩니다. 저 역시 처음부터 모든 걸 다 공개하며 정보를 밀어 넣기보다는 단계를 밟아나갈 생각입니다.
글을 마무리하는 이 순간까지도 무모한(?) 장비 도입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현시점 퀘이사존이 아니면 어느 PC 하드웨어 커뮤니티가 이러한 투자를 감행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QM지름이 말했듯, 퀘이사존이라는 집단이 원하는 이상은 마니아가 늘어나고, 그 마니아들이 모여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겁니다. 지금 심어둔 씨앗이 잘 자라나길 기원하며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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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퀘이사존 로고가 없는 사진은 해당 제품 브랜드 자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