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람이든 동물이든 덜 성숙한 존재, 즉 아기를 보고 귀여움을 느낍니다. 때때로 성장이 끝난 성체가 귀여운 경우도 있지만, 커뮤니티에서 귀여운 동물 이미지가 올라오면 대부분 미성숙한 개체인 사례가 많습니다. 근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참 신기할 일입니다. 그저 덜 성장했다는 이유만으로 과반수의 인간에게 귀여움을 어필할 수 있다는 건 그저 우연의 일치라고는 보기 어렵습니다. 오스트리아의 동물행동학자 콘라트 로렌츠(Konrad Lorenz)는 이러한 인간의 본능을 '아기 도식'(Baby Schema)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아기 도식은 인간의 아기와 유사한 생명체에 대해 귀여움을 느끼고, 보호 본능이 생기는 걸 일컫습니다. 앞서 성체가 귀여운 경우도 있다고 말했지만, 대부분 개, 고양이 등으로 두 동물은 모두 성체가 되고도 새끼 때 특징이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다 큰 개를 보고도 여전히 아기를 보듯 귀여워하는 거죠. 이는 인간이 아기를 보호하고 종을 유지하기 위해 생긴 자연스러운 본능입니다. 현대에 와서는 외부로부터 아기가 위협받을 가능성이 낮아졌는데요. 그러자 이 본능을 마케팅으로 활용하기 시작합니다.
대표적인 아기 도식을 활용한 장난감, Rubber Duck
위 이미지처럼 물에 둥둥 떠다니는 오리 인형을 러버덕(Rubber Duck)이라고 합니다. 직역하면 고무 오리인데요. 서구권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이 장난감은 1800년대 후반 고무 성형 기술이 발달하면서 널리 사용됐습니다. 이 인형은 몸체 색이 노란색인데, 모티브가 새끼 오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성체 오리는 흰색 털을 갖고 있지만, 새끼 오리는 병아리처럼 노란 털을 갖고 있습니다. 즉, 이 장난감을 만들 때도 귀여움을 어필할 수 있는 새끼를 활용한 셈입니다.
러버덕을 이후로 지금까지도 수많은 미디어에서 오리를 노란색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오리 이미지를 잘 활용한 키보드 브랜드가 있는데요. 바로 더키(Ducky)입니다. 더키는 브랜드 이름부터 오리(Duck)에서 착안하고, 브랜드 로고도 오리를 형상화했을 만큼 오리에 진심입니다. 그리고 오리를 좋아하는 브랜드답게 2013년 러버덕이 연상되는 노란색 키보드를 유튜브에 업로드합니다.
지금의 더키는 기계식 키보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인지도 있는 브랜드입니다. 그러나 2010년 무렵 기계식 키보드가 제2의 부흥기를 맞이했다는 걸 고려했을 때, 국내 기계식 키보드 역사는 짧은 편입니다. 그렇기에 과거 더키가 국내에서 인지도가 낮은 건 어쩔 수 없는 도리였죠. 그러나 위 영상을 등록하면서 많은 이들에게 더키라는 브랜드를 각인시킵니다. 이는 기계식 키보드를 이미 사용하고 있고, 앞으로 더 구매할 용의가 있는 이를 대상으로 한 한정된 범위가 아닙니다. 움짤(GIF)로 생성되어 기계식 키보드의 존재조차 모르는 소비자에게도 강하게 어필했습니다. 이때부터 '단무지 키보드'라는 별명으로 인지도를 높였고, 이후로도 Zero Shine Yellow Edition처럼 키보드에 더키만의 색깔을 담은 제품이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해당 영상이 등록되고 어느덧 9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더키도 여러 라인업을 거치며 키보드 제조 노하우를 차곡차곡 쌓아왔습니다. 그러나 긴 시간이 흐른 만큼 새로운 기계식 키보드 브랜드가 생겨났고, 이젠 기존의 강호를 위협하는 위치까지 올라왔습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소비자에게 잊히지 않기 위해선 다시금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야만 하며, 더키는 2013년 때처럼 샛노란 키보드로 답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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