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진짜로 중국의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스타트업 게임사가 만들었다고?
안녕하세요, QM중독입니다.
지난 8월 20일, 유튜브에서 듣도보도 못한 게임의 트레일러가 공개되며 전 세계 게이머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바로 중국 게임 사이언스(Game Science)에서 만드는 블랙 미스: 오공(Black Myth: Wukong)입니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백문이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 먼저 트레일러를 보고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블랙 미스: 오공 - 13분 공식 게임플레이 트레일러
※ 본문 해설에 사용된 트레일러의 대사는 영문과 중국어 간체의 번역을 통해 작성되었으며, 일부 오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손오공 콘셉트 아트
중국사대기서(1) 중 하나인 서유기는 천계에서 말썽을 부려 오행산에 봉인되었던 손오공이 현장(삼장법사)을 따라 서역(천축, 현대의 인도)으로 향하며 겪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드래곤볼로 친숙한 사이어인 손오공도 바로 서유기의 손오공에서 모티브를 따온 캐릭터기도 한데요. 블랙 미스: 오공 트레일러는 서유기 이후 손오공이 늙으면 닮았을 법한 노인(2)이 등장해 내레이션하면서 시작합니다.
(1) 중국사대기서: 원나라, 명나라 시대의 문학 중 가장 뛰어나고 기이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4가지 소설을 의미. 나관중의 삼국지연의, 시내암, 나관중의 수호전, 오승은의 서유기, 그리고 원작자 미상의 금병매 (2) 수염과 손톱의 형태가 미묘하게 닮았다. 참고로 서유기 속 손오공은 바위에 벼락이 맞아 태어난 돌원숭이로 불로불사를 탐하여 도술을 시작했고, 천계에서는 구천 년마다 익는 복숭아를 비롯한 온갖 진미와 술을 훔쳐 먹고 염라대왕을 속여 생사부에서 자신의 이름을 지웠으며(늙어 죽지 않음), 태상노군의 금단(불사약)까지 먹었기 때문에 굉장히 강력한 신체를 바탕으로 불로불사에 가깝다.
노인: 어떤 사람들은 그(손오공)가 현장(삼장법사)이 불경을 가져오는 것을 도왔다고 말하지. 그리고 투전승불(斗战胜佛, 불교 35부처 중 1인) 이 되었다고 해. 그 이후로 그는 영산에 머물렀다고도 하지.
노인: 어떤 이는 그가 성불하지 못했다고도 해. 그는 서역으로 가는 여정 중 어딘가에서 이미 죽었다고 말이야.
배경으로 보이는 나무들을 보면 바람에 제각각 휘청이는 배경 디테일까지 놓치지 않고 재현한 것이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노인: 또 어떤 이는 그런 여정은 없었다고 말해. 그는 단지 이야기꾼이 만들어낸 허구의 원숭이일 뿐이라고. 하지만 내가 들려줄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을 거야.
(게임 플레이 영상은 프리 알파 게임 버전으로 최종 버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노인: 이야기는 한 마리의 금빛 매미에서 시작한다네.
이미지에서 볼 수 있듯이 벌레로 변신 후 하급 요괴를 속여 지나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벌레로 변신해 날아가는 장면이나 오공이 달려갈 때 주변부를 흐릿하게 표현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후술하겠지만 사양을 많이 먹는 효과 배치가 많기 때문에 빠르게 이동할 때는 VR 게임처럼 주변부 해상도를 떨어뜨리고 블러 효과를 주는 방식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사양을 낮추기 위해서 말이죠.
모든 요괴를 속이고 지날 수 있는 것은 아니군요. 일부 요괴들은 오공의 변신술을 감지합니다.
그리고 벌어지는 첫 전투에서 꽤 충격적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전혀 어색하지 않은 움직임, 원숭이의 경쾌함이 느껴지는 손오공의 발놀림과 구르기 등 그동안 중국 게임에서 전혀 느낄 수 없던 모션의 매끄러움이 탁월하기 때문이죠.
시대적 배경이 배경인 만큼 오공과 적들의 옷은 주로 천 옷이 많은데요. 천 옷이 움직이는 모습에 상당히 공들인 흔적이 보입니다. 아마 천 옷의 흩날리는 모션은 최종 출시 때 최적화 문제로 다운그레이드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옷에 움직임이 많다는 건 그만큼 연산할 것이 늘어난다는 말이니까요. 주변 나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전투 중에도 카메라 워크에 따라 주변 나무들이 흔들리는 모습이 보여서 생동감이 배가되는데요. 이 역시 최적화 이슈가 뒤따를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두 가지를 끝까지 품고 갈 수 있다면 이런 요소들이 더해진 깊은 액션 몰입감만으로도 충분히 구매 가치가 있는 게임이 될 것 같습니다.
여의봉을 이용한 봉술 액션은 여느 액션 게임에서 찾아보기 힘든 중국만의 스타일로 상당히 참신한 움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활을 튕기는 모션과 이어지는 후려치기 연계까지 웬만한 AAA급 액션 어드벤처 게임과 비벼봐도 결코 뒤처짐이 없을 정도입니다. 제작사가 갓 오브 워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알려졌는데요. 이 정도 퀄리티라면 중국은 짝퉁만 만든다는 오명 대신 갓 오브 워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색을 더해 훌륭한 콘텐츠로 만들어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어지는 중간 보스 전은 갓 오브 워에서 발키리와 전투가 연상되기도 한대요. 배경에서 동양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다 보니 세키로: 섀도 다이 트와이스도 떠오릅니다. 움직임에 따른 화염 이펙트도 정말 훌륭하고, 흩날리는 불티도 자연스러우면서도 아낌없이 잘 만들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주변 사물 하나하나에 물리 연산이 적용되어 부서지도록 표현됩니다. 블랙 미스: 오공은 PC 외에 차세대 주요 콘솔에도 출시할 예정이라 밝혔는데요. 차세대 콘솔을 기다리는 팬이라면 손꼽아 기다리게 만들 이유가 한가지 늘어났습니다.
중간 보스와 전투 후 멋있어 보였던 화염 무기(赤朝, '붉은 아침')를 습득하면 변신술이 추가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새로 추가된 변신술 말고 애초부터 갖고 있던 기술은 갓 오브 워의 크레토스가 스파르탄의 분노를 쓸 때와 드래곤볼에서 손오공이 달빛을 보면 변하는 거대 원숭이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게 아닐까 싶기도 한 거대해진 광폭화(?) 모습이 됩니다. 잔몹들 광치기 좋군요.
토지공: 소신은 흑풍산의 땅으로 이곳에서 자네를 오랫동안 기다렸네. 모습이 정말 닮았군. 조금 더 가면 관음선원이 있어.
...그런데 누구와 모습이 닮았다는 걸까요?
토지공: 그 큰 개를 놀라게 하지 않도록 조심하게.
이후 큰 개의 소리가 들리고 토지공은 오공을 향해, 어서 도망치라고 말합니다. 저 문으로 들어가면 돌이킬 수 없다고 말이죠.
보스(首领) - 영허자(灵虚子)
참고로 툼 레이더 리부트에서 라라의 머리카락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Tress FX를 적용하면 프레임이 뚝 떨어지는 것을 보셨을텐데요. 털처럼 미세한 움직임이 많은 물체는 상당히 많은 연산을 요구합니다.
전투 중 보스가 우측 건물로 이동하는 움직임과 주변 사물이 튀는 것도 상당히 멋진데요. 앞 건물로 다시 옮겨간 뒤 보이는 보스의 실루엣이 상당한 위압감을 자랑합니다.
빛을 비스듬히 등지면서 포효하는 구도만으로 위압감을 연출하는 것은 어느 정도 센스를 요구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스타트업 기업임에도 개발자 외에 시각 이미지 파트를 담당하는 전문 인력까지 빠짐없이 배치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고요.
ㅗㅜㅑ
책에서 보고 상상했던, 머리카락을 뽑아 분신술을 펼치는 모습도 훌륭하게 재현되었습니다.
무기를 적조로 바꿔 들며 변신하는 오공. 변신술을 사용하면 체력이 가득 차고 변신 시간 타이머가 작동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적조를 휘두를 때 생기는 화염의 잔상과 날리는 불티들이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보스를 물리치고, 최후의 일격을 가하려는 찰라, 또 다른 봉 하나가 오공의 봉을 가로막습니다.
그것은 바로 여의금고봉(如意金箍棒)!(3) 우리가 여의봉이라고 줄여 부르는 봉의 공식 명칭인 여의금고봉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봉의 주인은?
(3): 용왕에게서 반강제로 뺏어온 뒤, 용왕의 형제들에게 투구와 갑옷 등도 빼앗아 온다.
화려한 갑옷을 두르고 있는 '찐' 손오공입니다. 정확히는 머리에 두른 띠 '긴고아'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오행산에 봉인되기 전의 제천대성(齊天大聖) 손오공으로 추정할 수도 있지만, 미쳐 날뛰던 요괴 시절의 모습이라기엔 평온함과 침착함이 느껴지도록 연출되었기 때문에 서역으로 여정을 마친 뒤 석가여래(석가모니, 우리가 흔히 부르는 부처님)로부터 부처(佛)로 임명된 투전승불(斗战胜佛=鬪戰勝佛)이 된 손오공이라고 봐야 타당할 것 같습니다. 미후왕(美猴王, 잘생긴 원숭이 왕), 제천대성 시절의 손오공은 차분함과 거리가 아득히 먼~, 그냥 미쳐 날뛰는 요괴 원숭이니까요. 손오공은 그렇다 치고, 지금까지 트레일러 속에서 플레이한 오공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리고 갑옷 장식을 살펴보면 디테일이 살벌한데요. 이 부분은 어쩌면 리얼타임 렌더가 아니라 컷 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정도 문양과 곡선을 모두 구현한 채 게임 속에서 움직이면 폴리곤 수를 엄청나게 늘려야 할 것 같은데, 이러면 또 연산량이 어마무시하기 때문이죠. 저 정도 퀄리티까지 텍스처 노멀 매핑 등으로 처리할 수 있는 것인지는 개발자가 아니라서 모르겠습니다만, 퀄리티가 빼어나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앞에 요괴를 두고 넝쿨을 타고 지나치는 액션도 볼 수 있는데요. 컷 신일지 아니면 어떤 방식으로 구현될지도 궁금해 집니다.
어떤 석상 앞에서 머리를 감싸쥐며 고통에 몸부림치는 장면인데 긴고아 때문일까요?
거대 요괴(?)의 얼굴을 밟고 올라가는 장면은 갓 오브 워에서 티탄을 밟고 올라가는 장면이 연상되기도 하는군요.
근두운을 타고 용을 쫓는듯 한 모습도 잠시 볼 수 있고요.
손오공이 구름 위 천계로 보이는 곳에서 무쌍을 찍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그래픽이 미완성 상태인 것 같지만 연기와 같은 표현이 또 굉장히 사양을 잡아먹기 때문에 최종 완성본이 더욱 궁금해지는 장면입니다. 또한 이 장면을 보면 천계에서 난장판을 만드는 제천대성(齊天大聖)(4) 시기의 손오공이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4): 하늘과 같이 높은 신선을 이르는 말, 망나니 같던 손오공을 달래기 위해 천계에서 필마온(弼馬溫)이라는 직위를 내리지만, 나중에 이것이 한낱 마구간지기임을 알고 분노한 손오공이 천계를 뒤집어 놓는다. 이후 손오공의 부하들이 제천대성이라는 별호를 짓고 이를 알게 된 천계에서 손오공을 응징하려 하지만 오히려 모조리 실패하면서 천계는 어쩔 수 없이 제천대성이라는 이름만 있고 아무런 권력이 없는 직위를 만들어주고. 이후 복숭아지기 임무를 내린다. 그런 뒤에도 손오공은 9천 년마다 익는 복숭아와 천계의 진미와 영약들을 훔쳐먹고 사고만 치다 석가여래가 직접 나서서 500년 동안 오행산에 가둔다.
블랙 미스: 오공을 급작스레 공개한 이유?
지금까지 블랙 미스: 오공의 게임 플레이 트레일러를 살펴보았습니다. 이들이 갑자기 이 트레일러를 공개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게이머들에게 자신들이 만드는 게임을 소개하고픈 마음도 당연히 있겠지만, 홈페이지에 몇 가지 질문과 답변을 남겼습니다.
Q1. '블랙 미스:오공(이하 '오공')의 초기 영상을 공개한 이유는? A1 - 직접적 원인은 개발팀 구성원, 특히 전문가가 상당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는 전국, 나아가 전 세계에서 액션에 강점을 지닌 친구들이 '게임 사이언스'에 합류하여 동양적인 판타지를 만들어 가기를 매우 열망한다. 자세한 내용은 회사 홈페이지의 하단에 있는 채용 정보를 참고해주기 바라고, 내용은 수시로 업데이트될 예정이다.
Q2. '오공'은 어떤 게임 플랫폼으로 만들어지나? A2 - PC + 모든 메인스트림 호스트 플랫폼 및 원활하게 실행될 수 있는 클라우드 게임 플랫폼.
Q3. 언제쯤 '오공'이 발매될까? 오래 기다릴 수 없어. A3- 500년이면 안 될텐데...(역주: 손오공이 오행산에 500년간 봉인됨) 저희가 플레이어로서 만족스러울 때 공개할 예정이지만, 비용, 효율도 고려할 예정이다. 더 많은 블랙 미스 시리즈가 있고, 신중하게 계획할 것이다.
게임 사이언스
블랙 미스: 오공을 공개한 게임 사이언스는 2014년 6월 텐센트 출신 개발자들이 자본금 625,000 위안(약 1억 1천만 원)의 자본으로 설립한 스타트업 기업입니다. 2016년 스팀에 무료 전략 게임인 Art of War: Red Tides를 출시하고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는데요. 후속 프로젝트가 바로 블랙 미스: 오공입니다. 게임 사이언스는 현재 100인 미만 신생 개발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설립자인 펑지(冯骥)와 양치(杨奇)는 텐센트의 자회사인 퀀텀 스튜디오에서 아수라 온라인을 개발하던 인력으로 아수라 온라인 역시 서유기 세계관을 바탕으로 그려진 게임이기 때문에 이들이 얼마나 서유기에 애착을 가졌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이제 자기 회사를 차려 만들고 싶은 대로 손오공의 이야기를 그려나가고 있는 것이죠.
트레일러에서 보았듯이 블랙 미스: 오공은 봉술 액션과 도술, 매끄러운 모션, 화려한 이펙트와 옷이나 장식 등도 훌륭한데요. 하나하나 공들인 티가 엿보이는 배경과 사물들까지 메이저 게임사가 만들고 있는 AAA급 기대작이라 해도 믿을 만큼 훌륭한 퀄리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세한 스타트업 개발사가 만들고 있다는데 이 정도로 훌륭한 걸 꺼내면 어떻게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 수많은 게임 업체들이 "AAA급 타이틀 만들 겁니다!"라고 발표한 뒤 입으로만 떠들다가 흐지부지되는 사례는 많이 봐왔지만, 블랙 미스: 오공처럼 만들고 있는 실물을 먼저 꺼내 보인 뒤 "우리 이런 거 만드는 회산데, 개발자 구합니다!"를 외치는 모습은 굉장히 이례적입니다. 그런데 그 실물이 프리-알파 버전임에도 어설픈 것이 아니라 저 상태에 조금만 다듬어서 나와준다면 메이저 게임사의 AAA급 타이틀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니 다시 생각해도 믿기 어려울 지경입니다.
국내 게임 산업 현황
우리는 중국 게임사들이 다른 게임을 표절해서 돈 번다고 비난해 왔습니다. 실제로 중국 게임들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의 많은 게임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도 그렇게 남을 헐뜯을 입장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 국민 게임으로 불렸던 카트 라이더는 닌텐도의 마리오 카트 표절 의혹을 받았고, 카트 라이더의 주인공들이 등장했던 크레이지 아케이드는 허드슨의 봄버맨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있었고 합의금을 지불하기도 했습니다. 한때 게임 센터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던 댄스게임 펌프 잇 업은 DDR(댄스댄스레볼루션)과 유사점이 있었고, 리니지만 하더라도 출시 초기에는 넷핵과 유사점이 많아 보였습니다. 이 외에도 수많은 카피캣 사례가 있습니다.
요즘은 어떤가요? 과거에 영광을 누렸던 MMORPG 게임들을 모바일로 이식하며 다시 한번 돈 뽑아먹기 급급한 추세입니다. 인기 있었던 MMORPG 게임들은 대부분 모바일로 이식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죠. 게이머들이 가진 추억을 빌미로 초반에 이익을 뽑아내고 빠르게 잊히는 게임이 많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AAA급 신작 개발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뿐더러, 그나마 출시하는 게임들은 상당수가 랜덤 박스 형태의 확률형 아이템을 삽입해서 좋은 아이템, 캐릭터, 스킨 등을 얻기 위해 과금을 유도하는 게임이 많습니다. 이런 게임들도 마찬가지로 오래 지속되지 않고 빠르게 도태되며, 또 껍데기만 바뀐 같은 부류의 게임이 출시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적은 개발비와 추억팔이, 과금 등 단기 수익에 급급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죠.
모바일 게임 확률형 아이템 지출액 조사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2020 게임이용자 실태조사 113페이지> 5만 원 미만은 여성, 그 이상은 남성 지출 비율이 높으며, 사회 활동으로 개인 수익이 높은 30~40대가 가장 높은 평균 지출을 기록했다.
게이머들이 게임 제작사에 거창한 기대를 하며, 예술성이 높은 게임이 만들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재밌는 게임을 바라는 것이죠. 매번 단기 이익에 눈이 멀어 모바일 이식과 과금 요소만 개발하고 있으니 개발자의 기발함이 스며있는 게임, 스토리가 흥미롭거나 감동적인 게임, 때론 연출이 뛰어나 기억에 남는 게임 등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최근 우리나라 게임 중 참신한 스토리를 지닌 게임이나 연출이 좋았던 게임 등이 기억나시나요? 최근 20년 동안 생각해보면 19년 전에 나온 화이트데이와 최근엔 기적의 분식집이라는 게임 딱 2편이 생각납니다. 제가 이 기간에 어림잡아 3천 5백여 개의 게임을 구매할 만큼 이 게임 저 게임 관심이 많은 편인데 말이죠. 20년 이상 넘어가면 창세기전 시리즈 정도를 언급할 수 있겠네요.
중국 게임 시장의 성장
그동안 우리는 중국 게임사들이 우리보다 한참 아래라고 여겼습니다. 아마 지금도 그렇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 겁니다. 하지만 중국 최고의 게임사인 텐센트는 이미 수년 전부터 매출액 기준 세계 최대 규모의 게임사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는 리그 오브 레전드도 라이엇 게임즈의 게임이지만 모회사는 중국의 텐센트죠. 클래시 오브 클랜의 슈퍼셀 역시 텐센트의 자회사입니다. 매주 무료 게임을 뿌려대는 에픽게임즈의 대주주이기도 하죠. 우리에게 친숙한 블리자드 역시 텐센트의 입김이 매우 크게 작용합니다. 또한 우리나라 게임 중 중국에서 큰 성공을 거둔 던파나 크로스파이어, 메이플스토리 2, 블레이드 앤 소울 등을 배급하는 회사 역시 텐센트입니다. 규모 면에서 텐센트는 압도적인 세계 1위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중국 게임을 무시해왔습니다. 그동안 중국 게임 시장은 엄청난 수요를 바탕으로 양적 규모는 커졌지만, 질적 성장은 기대만큼 이루지 못했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몇 년간 1위를 해오면서 텐센트는 더욱 거대해졌고, 과감한 투자로 질적인 성장도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텐센트가 유통하는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콜 오브 듀티: 모바일이 세계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바 있고, 지난 6월에는 포켓몬 유나이트를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카피캣을 만들던 업체가 이제는 세계 게임 시장의 공룡이 되었습니다.
마치며
그동안 텐센트를 비롯한 중국 게임사들의 성장은 누구나 충분히 알고 있었습니다. 국내에서도 중국에서 제작한 모바일 게임들이 최근 몇 년간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죠. 하지만 우리나라에 비하면 중국 게임사들이 노하우와 기술력이 부족할 것이라 여겼던 제 편견은 블랙 미스: 오공의 트레일러를 보고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우리나라의 게임 업계는 리니지, 바람의 나라 이후 MMORPG의 달콤함에 취해 너 나 할 것 없이 MMORPG로 뛰어들었고 다른 장르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모바일 게임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자 새로 개발할 생각은 하지 않고 과거에 즐겼던 MMORPG 게임을 다시 모바일로 출시하고 있죠. 그리고 그 결과 우리나라의 게임은 도태되었습니다. 젤다의 전설이나 갓 오브 워, 더 라스트 오브 어스 1 같은 명작도 아니고 그냥 흔한 스토리텔링이 있는 싱글 플레이 게임 하나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죠.
중국도 처음에는 비슷했습니다. 서로 이 게임 저 게임 비슷하게 따라 하기 급급했죠. 하지만 적어도 우리나라처럼 한가지 장르로 획일화되지 않고 장르의 다양성은 유지해왔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텐센트의 자회사에서 게임을 만들다 독립한 스타트업 기업이 이 정도 퀄리티를 뽑아낸다는 점에서 매우 놀랍고 부럽습니다. 이들이 단순히 서양 게임에 감명받고 그대로 따라 만든 카피캣이라면 전 세계 게이머들이 이 게임을 주목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들이 사랑하는 서유기를 재해석하고 동양의 미를 깊이 베어낸 것이죠. 그러면서도 캐릭터 디테일과 모션 등 기본기도 충실했습니다.
갓 오브 워의 디렉터 '코리 발록' 역시 블랙 미스: 오공의 트레일러를 보고 '굉장하다'고 리트윗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게임사도 개발자들의 기량을 펼칠 수 있도록, 장기적인 안목으로 게임 콘텐츠를 바라봐주기를 바라고요. 하루빨리 블랙 미스: 오공을 만나고 싶어지는군요. 단! 아직 개발자의 말처럼 프리-알파 버전이기 때문에 정식 출시 후 어떻게 바뀔지 속단하기는 이릅니다. 초심대로 쭉 만들면 좋겠지만, 모 회사처럼 3단 너프 후 출시할지도 모르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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