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NVIDIA와 AMD, 현재 외장그래픽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제조사들입니다. 이들 제조사에서 출시하는 지포스와 라데온 그래픽카드는 제3의 그래픽 회사인 인텔이 범접할 수 없는 성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3개 회사 모두 새로운 그래픽카드를 출시하고 있는 지금, 다시 한번 과거를 되짚어 보면서 이전에는 이랬지 라는 추억에 젖어보는 시간을 가지는 일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전 그래픽카드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여러 회사들이 어떤 그래픽카드를 만들어왔는지, 어떻게 싸워왔는지 역사를 통해 알아가면 재미있지 않을까요?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엔비디아, ATi, 3dfx, 매트록스, S3 그래픽스 로고
엔비디아와 ATi 중 먼저 설립한 건 ATi입니다. AMD가 아니고 ATi는 무슨 회사? 라고 물으신다면 대답해드리는 게 인지상정. 이 세계에 그래픽카드를 만들기 위해, 1985년 설립합니다. ATi가 2006년 AMD에 인수되면서 AMD 라데온이 된 것이죠. 인텔, AMD, 엔비디아가 모두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데, ATi는 캐나다에서 창립합니다. ATi는 1986년, IBM 컴퓨터를 위한 그래픽 전용 처리장치, 원더Wonder 시리즈를 출시합니다.
▲ voodoo, 출처: 512bit.net
지금은 지포스와 라데온, 인텔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외장 그래픽카드 시장이지만, 당시에는 수많은 회사들이 난립하고 있었습니다. ATi보다 이른 1976년 매트록스Matrox가, 1989년 S3 그래픽스, 1993년 엔비디아, 1994년 3dfx 인터렉티브3dfx Interactive가 각각 창립합니다. 1990년대는 어떤 회사가 우위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각각의 회사가 모두 두각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특히 1990년대 중반에는 지금까지 명품으로 회자되는 제품들이 출시됩니다. 몇 개만 꼽아보더라도, 매트록스가 1995년, 밀레니엄Millenium 시리즈를 출시하여 인기를 끌었으며, 3dfx는 부두Voodoo를 1996년 출시하여 시장을 장악했습니다. S3는 트리오Trio로, ATi는 마하Mach 시리즈로 점유율을 확보합니다.
▲ 왼쪽: NV1, 오른쪽: Mach 64, 출처: wikimedia
이런 상황에서 1995년 출시한 엔비디아 최초의 제품인 NV1은 경쟁 제품과 비교하여 성능이 뒤처져서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3D 시대에 진입하면서 엔비디아는 급격하게 성장합니다.
▲ 1993년 출시한 둠(왼쪽), 버추어 파이터(오른쪽)
출처: wikimedia
1990년대 중순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3D 성능이 중요해지기 시작합니다. 특히 1995년 윈도우 95가 출시되면서 이러한 경향이 더 두드러집니다. 엔비디아는 1997년, 리바Riva 시리즈 최초의 제품인 리바 128을 출시하며, 순식간에 급부상하고, 3dfx는 1997년 부두 러쉬Voodoo Rush, 1998년 부두2와 부두 밴시Voodoo Banshee를 출시하여 본격적으로 엔비디아와 경쟁 체제를 구축합니다. ATi는 1996년, 레이지Rage 시리즈를 출시했는데, 경쟁 제품에 비해 성능이 낮아서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받고 맙니다. 대신 1998년 출시한 레이지 128로 어느 정도 성능상의 격차를 줄이는 데 성공합니다.
▲ 1996년 출시한 디아블로, 출처: gog.com
▲ 왼쪽: 리바 128, 오른쪽: 레이지 128
출처: 512bit.net
1999년 3dfx는 부두3를 출시하는데, 여기서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릅니다. 엔비디아, ATi와 마찬가지로 3dfx역시 생산공장 없이 다양한 그래픽카드 제조사에 칩을 공급해서 그래픽카드를 출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3dfx는 스스로 그래픽카드를 만들어서 판매하면 회사 이익이 늘어나리라 생각했고 생산공장을 인수합니다. 부두3는 오직 3dfx에서 생산하는 제품만 출시되었고 다른 제조사에서 출시한 파생 제품이 전멸하며 선택지가 급격하게 줄어듭니다. 동시에 출시 지연과 생산량 감소로 성능과는 별개로 점유율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 voodoo3 2000, 출처: 512bit.net
▲ 2000년 출시한 디아블로2, 출처: diablo2.blizzard.com
▲ 왼쪽: 지포스 256, 오른쪽: 라데온 VE
출처: 512bit.net
1999년 역사적인 제품이 출시됩니다. 엔비디아 최초의 지포스 그래픽카드, 지포스 256의 등장입니다. 지포스 256은 이전 세대 제품들과 비교하여 엄청난 성능 향상을 이루며 단숨에 3D 그래픽카드 시장을 석권합니다. 동시에 최초로 GPU(Graphics Processing Unit)라는 이름을 사용한 그래픽카드입니다. 2000년에는 후속 제품인 지포스2 시리즈를 출시합니다.
2000년에는 ATi에서도 첫 번째 라데온 그래픽카드, 라데온 256을 출시하여 역사에 이름을 올립니다. 첫 번째 라데온 제품군은 이후 라데온 7000 시리즈로 이름을 바꾸었고, 역시 이전 세대보다 성능을 크게 끌어올립니다.
자멸을 선택한 3dfx는 후속 제품인 부두4와 부두5의 출시가 지연되며 순식간에 시장에서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2000년에 겨우 출시했는데, 지포스, 라데온 보다 성능은 낮으면서 가격은 비싼 제품이었고 결국 부두5를 마지막으로 회사가 파산하고 맙니다. 3dfx는 결국 경쟁자였던 엔비디아에 인수되어 사라지고, 3dfx가 개발한 멀티그래픽 기술, SLI라는 명칭만이 살아남습니다.
▲ 2002년 출시한 배틀필드 1942, 출처: gamewatcher.com
▲ 왼쪽: 지포스3 Ti500, 오른쪽: 라데온 8500 LE
출처: 512bit.net
3dfx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던 2001년, 엔비디아는 지포스3 시리즈를 출시합니다. 예상보다 지연되어 지포스3는 일부 상위모델만 출시할 수 있었고, 하위 라인업은 여전히 지포스2 시리즈를 출시하는 데 그칩니다. 당시 엔비디아는 마이크로소프트 Xbox에 들어가는 칩을 설계하고 있었는데 여기에 집중했기 때문입니다. 엔비디아가 주춤하는 사이, ATi는 2001년 말, 라데온 8500을 출시하고 엔비디아 그래픽카드와 대등한 싸움을 시작합니다.
2002년, 엔비디아 지포스4 시리즈가 출시됩니다. 상위 라인업으로 지포스4 Ti를, 하위 라인업으로는 지포스4 MX를 출시하며 드디어 전 제품군에서 라인업을 갱신합니다. 하지만 밖으로 보이는 부분만 그랬을 뿐, 지포스4 MX 시리즈는 지포스2의 공정을 미세화한 제품이었습니다.
▲ 2003년 출시한 콜 오브 듀티(왼쪽), C&C 제너럴(오른쪽)
출처: gamewatcher.com
▲ 왼쪽: 지포스 FX 5800 Ultra, 오른쪽: 라데온 9700 Pro
출처: ixbtlabs.com
ATi는 2002년, 라데온 9000 시리즈 그래픽카드를 출시합니다. 라데온 9000 시리즈는 지포스4와 얼마 후 출시하는 지포스 FX 5000 시리즈보다 우위를 점하며 순식간에 ATi를 1위 자리로 끌어올립니다. 동시에 라데온 8500에 사용한 코어의 구성을 줄여서 하위 모델로 출시하여 전체 라인업을 9000 시리즈로 갱신합니다.
2003년 초에 엔비디아는 지포스 FX 5800을 출시하는데, 이상한 결과물이 튀어나옵니다. 지포스 FX 5800은 당시 그래픽카드가 필요로 하던 구성보다 더 많은 기능을 지원했는데, 이에 따른 결과로 소비전력과 온도가 급격하게 높아졌습니다. 처음 출시된 하이엔드 모델인 지포스 FX 5800은 먼저 출시되어 있던 라데온 9700과 성능은 비슷하면서 소비전력과 온도가 더 높았습니다. 데스크톱 그래픽카드 역사상 최초로 2슬롯 쿨링설루션을 사용했을 정도였습니다. 심지어 소음이 엄청나서 헤어드라이어라는 악명을 얻고 말죠. 엔비디아는 2003년, 내부 구성을 개선한 제품을 지포스 FX 5900 시리즈로 출시하지만, 동시에 라데온 9800이 출시되어 ATi는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습니다.
당시 그래픽카드는 지금과 다른 AGP라는 슬롯 방식으로 메인보드에 연결되었는데, 처음으로 PCI Express 슬롯을 지원하는 제품이 등장한 게 이 시기입니다. 다만, 이때까지 주력 인터페이스는 AGP였고, PCI Express는 별도의 컨트롤러 칩세트를 탑재해야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기조는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고 PCI Express 그래픽카드가 대중화되는 건 2세대 이후가 됩니다.
▲ 2003년 출시한 최고의 레이싱 게임 빅릭스, 출처: imdb.com
▲ 2004년 출시한 파크라이(왼쪽), 하프하이프2(오른쪽)
출처: gamewatcher.com
▲ 왼쪽: 지포스 6800 GT SLI, 오른쪽: 라데온 X850 XT 크로스파이어
출처: ixbtlabs.com
2004년, 엔비디아는 지포스 6시리즈 그래픽카드를 출시합니다. 너무 많은 기능을 넣어서 실패한 지포스 FX시리즈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다시 보수적인 설계로 돌아와서 성능을 높이고 문제가 되었던 소비전력, 온도를 억제하는 데 성공합니다. 지포스 6시리즈에는 SLI라는 멀티그래픽 기술이 처음 도입됩니다. 동시에 그래픽카드 1개에 2개 칩을 사용한 듀얼 칩 그래픽카드도 출시합니다.
ATi도 같은 시기 새로운 라데온 X100 시리즈 그래픽카드를 출시합니다. 성능 자체는 지포스 6시리즈와 비슷한 제품으로 SLI에 대응한 크로스파이어Crossfire를 처음 도입합니다. 다만, 같은 모델을 사용하기만 하면 연결할 수 있는 SLI와 달리, 크로스파이어는 한 개 그래픽카드는 반드시 지원 컨트롤러가 탑재된 전용 제품이어야 한다는 제약이 있어 널리 사용되지는 못했습니다. 이런 문제는 나중에 출시되는 HD 2000 시리즈에 가서야 해결합니다.
라데온 X100 시리즈에 문제가 되었던 건 메인스트림 등급입니다. 메인스트림 등급은 110nm 공정을 사용하기로 했는데, 수율이 좋지 않은 뜻밖의 문제를 겪으며 고전하고 맙니다. 지금이나 옛날이나 모두 회사 이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메인스트림을 비롯한 하위 라인업인데, 여기서 신제품을 출시하지 못하는 상황에 빠집니다. 결국 상위 칩의 구성을 줄이거나, 이전 세대 모델을 새로운 이름으로 출시하는 방식으로 버티게 됩니다.
▲ 2006년 출시한 콜 오브 듀티 2, 출처: gamewatcher.com
▲ 왼쪽: 지포스 7800 GTX, 오른쪽: 라데온 X1800 XL
출처: ixbtlabs.com
2005년부터 ATi는 힘겨운 시기를 보내게 됩니다. 2005년 엔비디아는 지포스 7시리즈, ATi는 라데온 X1000 시리즈를 출시합니다. 당시 엔비디아는 플레이스테이션 3, ATi는 Xbox 360의 그래픽 부분을 설계하고 있었는데, 이런 이유로 양사 모두 출시가 예상보다 지연됩니다. 다만 처음 등장한 지포스 7800 GTX는 이전 세대보다 확실한 성능 향상을 이룬 반면, 라데온 X1800 시리즈는 이전 세대인 라데온 X850 XL의 구성은 거의 그대로 두면서 공정만 미세화하여 성능 향상이 크지 않았습니다.
성능이 오르는 건 2006년 출시된 라데온 X1900 시리즈부터입니다. 스펙을 크게 올려서 성능을 높였지만, 엔비디아는 공정을 ATi와 같은 90nm로 미세화하여 클록을 높인 지포스 7900 시리즈로 대응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하이엔드가 아닌 메인스트림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지포스 7000 시리즈가 메인스트림~엔트리 모델 라인업을 2006년 끝마쳤는데, 이와 대결해야 할 라데온 X1600과 X1300는 성능이 엄청나게 낮았기 때문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더 고성능인 제품을 2006년 말부터 출시하지만, 엔비디아는 가격을 인하하여 ATi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듭니다.
그리고 한 가지 사건이 발생하는데, CPU 회사인 AMD가 ATi를 2006년 7월 인수한 일입니다. 하지만 ATi=라데온이라는 인식이 사람들에게 이미 각인된 상태였고, 당분간은 ATi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합니다.
추가로 점유율을 높이던 PCI Express가 대세가 되어, AGP 타입 그래픽카드가 공식적으로 출시된 마지막 세대가 됩니다. 이후 출시되는 AGP 그래픽카드는 모두 그래픽카드 제조사에서 별도로 커스텀 한 모델입니다.
▲ 2007년 출시한 콜 오브 듀티 4: 모던 워페어(왼쪽), 크라이시스(오른쪽)
출처: gamewatcher.com
▲ 왼쪽: 지포스 8800 GTX, 오른쪽: 라데온 HD 2900 XT
출처: ixbtlabs.com
2006년 11월, 지금까지 출시한 그래픽카드를 모두 구시대 유물로 만들어 버릴 정도로 혁명적인 제품이 출시합니다. 지금도 회자되는 엔비디아 지포스 8800 GTX의 등장입니다. 이 전까지 그래픽카드 처리 유닛은 버텍스와 픽셀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지포스 8000 시리즈는 그래픽 처리 유닛을 하나로 합친 통합 셰이더라는 완전히 새로운 구조를 채택했습니다. 이전까지 그래픽카드는 오직 말 그대로 그래픽 처리 능력만 있었을 뿐이지만, 이때부터 연산 장치로의 가능성이 열립니다. 이 통합 셰이더는 나중에 쿠다CUDA 코어라는 명칭으로 바뀝니다.
엔비디아가 지포스 8000 시리즈 제품을 출시했는데, ATi에서는 대응할 제품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대신 라데온 X1000 시리즈의 가격을 낮추고 공정을 미세화 제품을 출시하며 시간을 벌고 엔비디아처럼 통합 셰이더로 설계한 제품을 출시하기로 합니다. 2007년, ATi는 HD 시대에 맞게 이름을 X에서 HD로 바꾼 HD 2900 시리즈를 출시합니다. 90nm로 제조되던 지포스 8800 GTX보다 미세화된 80nm를 사용하고 메모리 인터페이스가 더 넓었음에도, 미묘한 성능에 소비전력은 높아서 도저히 엔비디아 제품에 대항할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메인스트림 등급도 사정은 다르지 않습니다. 분명 엔비디아보다 미세화된 공정을 사용했음에도, 먼저 출시되어 있던 지포스 8600 시리즈와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죠. 혁명적인 지포스 8000 시리즈에 밀려 ATi는 힘을 잃어가지만, 플래그십에서의 싸움을 회피하고 판매량이 높은 하위 등급에 집중하기로 한 전략이 성공하며, 이후 기사회생하게 됩니다.
양사 모두 이 시기 출시된 제품이 상당히 의미가 깊습니다. 엔비디아가 나중에 테슬라Tesla로 명명한 지포스 8000 시리즈 아키텍처는 이후 지포스 200시리즈까지, ATi가 테라스케일TeraScale로 명명한 라데온 HD 2000 시리즈 아키텍처는 HD 6000 시리즈까지 이어집니다.
▲ 지포스 8800 Ultra
▲ 2008년 출시한 폴아웃 3(왼쪽), GTA IV(오른쪽), 출처: gamewatcher.com
▲ 왼쪽: 지포스 9800 GTX, 오른쪽: 라데온 HD 3870
출처: ixbtlabs.com
HD 2000 시리즈의 출시로부터 불과 반년만인 2007년 말, ATi는 HD 2000 시리즈의 구성은 거의 그대로 두면서 공정을 80nm에서 55nm로 줄이고 메모리 인터페이스를 절반으로 낮춘 HD 3000 시리즈를 출시합니다. 공정이 미세화된 덕분에 소비전력이 낮아졌고 동시에 공격적인 가격 정책으로 인기를 끄는 데 성공합니다. 동시에 부족한 성능을 만회하기 위해 라데온 HD 3870과 HD 3850 칩을 2개 사용한 라데온 HD 3870 X2, HD 3850 X2 같은 제품을 출시합니다. 동시에 하위 등급도 55nm로 미세화하고 가격을 인하하여 나름대로 성공을 거둡니다.
엔비디아도 ATi와 비슷한 정책을 씁니다. 지포스 8000 시리즈는 매우 성공적인 제품이었고, 성능도 경쟁사를 상대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으므로, 공정을 미세화한 신제품을 출시합니다. 다만, ATi처럼 새로운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는데, 여기서 굉장히 난잡한 문제가 생깁니다. 90nm를 65nm로 미세화하여 지포스 8800 GTS를 2007년 말에 출시하는데, 이미 1년 전 같은 이름을 가진 90nm 공정 제품을 출시했기 때문입니다. 더 심각해지는 건 이후입니다. 이 65nm 공정의 지포스 8800 GTS를 2008년에 지포스 9800 GTX로 리네이밍합니다. 클록을 끌어올리기는 했으나, 기본적으로 지포스 9800 GTX는 8800 GTS 65nm의 클록업 버전에 지나지 않습니다. 라데온 HD 3870 X2에 대응하기 위해 지포스 9800 GTX코어를 2개 사용한 9800 GX2를 출시하고, 지포스 9800 GTX의 공정을 55nm로 미세화한 9800 GTX+를 출시하기도 합니다.
▲ 왼쪽: 지포스 9800 GX2, 오른쪽: 라데온 HD 3870 X2
출처: ixbtlabs.com
메인스트림도 별다를 바 없어서, 65nm와 55nm 공정을 사용한 제품이 같은 이름을 사용하며 몇 달만에 다시 출시해서 혼란한 상황이 지속됩니다.
▲ 2009년 출시한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2, 출처: gamewatcher.com
▲ 왼쪽: 지포스 GTX 280, 오른쪽: 라데온 HD 4870
출처: ixbtlabs.com
2008년 중순, 엔비디아와 ATi양사 모두 신제품을 출시합니다. 엔비디아는 지포스 GTX 280과 구성을 줄인 GTX 260을, ATi는 라데온 HD 4870과 역시 구성을 줄인 HD 4850을 각각 출시합니다. 다만, 제품 등급이 달랐습니다. 지포스 GTX 280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최상위 모델로 출시했지만, 라데온 HD 4870은 그보다 등급이 낮았기 때문입니다.
ATi는 대신 가격에 승부수를 띄웁니다. 라데온 HD 4870은 저렴한 GDDR3대신 그래픽카드 최초로 GDDR5 메모리를 사용하고 인터페이스를 256-bit로 줄였습니다. GDDR3 메모리에 512-bit를 사용한 엔비디아와 반대되는 정책입니다. GDDR5는 분명 비쌌지만, 시간이 갈수록 가격이 낮아질테고, 결과적으로는 저렴해진다는 생각이었죠. 이 선택은 성공적이어서 상당한 가격 하락을 이뤄냅니다.
라데온 HD 4870보다 가격이 중요했던 HD 4850은 GDDR3를 사용해서 지포스 9800 시리즈와 9800 GTX+를 리네이밍한 GTS 250과 대결합니다. 라데온 HD 4870과 HD 4850은 소비전력도 상식적인 수준으로 억제하는 데 성공하여 칩을 2개 사용한 HD 4870 X2와 HD 4850 X2가 얼마 후 출시되어 플래그십 시장에도 제품을 선보입니다.
2009년, 엔비디아는 공정을 65nm에서 55nm로 미세화한 지포스 GTX 285와 코어 수를 소폭 늘린 GTX 260을 출시하고 GTX 285 코어의 메모리 인터페이스를 줄여서 2개 사용한 GTX 295를 출시합니다. ATi는 이 시기 한가지 인상적인 제품을 출시하는데, 바로 라데온 HD 4890입니다. HD 4870의 클록을 높이도록 설계한 칩을 사용하여 최초로 1GHz 코어 클록으로 사용이 가능해진 모델입니다. 라데온 HD 4890의 성능에 놀란 엔비디아는 부랴부랴 지포스 GTX 275를 출시하는 등 ATi의 압박이 거세집니다.
▲ 2010년 출시한 스타크래프트 2(왼쪽),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오른쪽)
출처: gamewatcher.com
▲ 왼쪽: 지포스 GTX 480, 오른쪽: 라데온 HD 5870
출처: ixbtlabs.com
양사 모두 55nm 공정 다음으로 대만 TSMC의 40nm 공정을 사용하기로 합니다. ATi는 한발 먼저 라데온 HD 4700 시리즈에서 40nm 공정을 사용했는데, 생산 수율이 엄청나게 낮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 낮은 수율 때문에 HD 4700 시리즈로 메인스트림 시장에 대응하는 게 어려워지자 HD 4870의 구성을 줄이는 형태로 HD 4730을 출시하고 가격을 엄청나게 낮추는 방식으로 해결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매를 먼저 맞은 ATi는 차세대 제품을 별 문제없이 출시하는 데 성공합니다. 전화위복인 셈이죠.
이를 몰랐던 엔비디아는 그 유명한 페르미Fermi 아키텍처의 지포스 400 시리즈에서 엄청난 문제에 직면합니다. 엔비디아는 최상위 칩의 크기를 500mm2 정도로 만들고 있었는데, 이는 공정상 문제가 있을 경우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여유 면적이 거의 없는 거대한 크기입니다. 칩 크기가 큰데 수율까지 낮으면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칩이 급격하게 줄어듭니다. 예를 들어 같은 면적의 공간에 각각 코끼리 100마리와 닭 1000마리를 채워 넣고 무작위로 10발을 쐈을 때, 어떤 동물이 더 많이 살아남는가와 비슷합니다. 한 발당 한 마리씩 죽는다고 해도 코끼리는 10%나 죽는 셈이지만, 닭은 1%밖에 죽지 않습니다. 실제로 칩은 한 층에 그치지 않고 여러 층의 조합으로 구성되므로 3층이라면 무작위로 30발씩 쏘는 셈입니다. 이렇게 되면 비율 차이는 더 벌어집니다.
반면 ATi는 300mm2 근처의 중간크기 칩으로 최상위 제품을 만들어 와서 낮은 수율에도 어느 정도 대응할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 라데온 HD 4700 시리즈로 TSMC 40nm 공정의 끔찍한 수율을 미리 겪어봤고 이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합니다. 2009년 9월, 라데온 HD 5000 시리즈가 출시되고 엔비디아가 공정에 고통받고 있을 때, 재빨리 메인스트림에서 하이엔드까지 시장을 석권하는 데 성공합니다.
반년 넘게 지난 2010년 3월에야 엔비디아는 지포스 GTX 480을 출시하지만, 이미 시장은 라데온으로 재편된 상태였고 처음 출시된 제품의 쿨러 소음과 온도가 굉장해서 불판이라는 별명을 얻습니다. 다만 성능 자체는 라데온 HD 5870보다 좋았는데, ATi는 HD 5870 2개를 사용한 HD 5970을 이미 출시했으므로 최상위 그래픽카드의 자리도 차지할 수 없었습니다. 엔비디아는 비싸게 만들어낸 거대한 코어를 사용하기 위해 일부를 비활성화한 지포스 GTX 470과 GTX 465를 출시하지만, 미봉책밖에 되지 않습니다.
▲ 왼쪽: 지포스 GTX 460, 오른쪽: 라데온 HD 5850
출처: ixbtlabs.com
다행히 메인스트림 시장에서는 크기를 줄이고 구성을 단순화한 새로운 코어를 만들어서 문제를 해결합니다. 엔비디아는 2010년 7월, 지포스 GTX 460과 GTS 450을 출시해서 하이엔드의 실패를 만회합니다. 엔비디아는 끔찍했던 40nm 공정을 빨리 버리고 싶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합니다. 이유는 이번에도 TSMC 때문이었습니다.
다음 화 보러 가기: 엔비디아와 ATi(AMD) 그래픽카드 역사 2화
요약
1985년 ATi 창립, 1993년 엔비디아 창립
1999년 지포스 256 출시
2000년 라데온 256 출시
2001년 지포스3 시리즈, 라데온 8500 출시
2002년 지포스4 시리즈, 라데온 9000 시리즈 출시
2003년 말 3dfx 파산
2003년 지포스 FX 5000 시리즈, 라데온 9800 출시
2004년 지포스 6시리즈, 라데온 X100 시리즈 출시
2005년 지포스 7시리즈, 라데온 X1000 시리즈 출시
2006년 AMD가 ATi를 인수
2006년 말 지포스 8800 GTX 출시
2007년 HD 2000 시리즈 출시
2007년 말 HD 3000 시리즈 출시
2008년 지포스 200 시리즈, 라데온 HD 4000 시리즈 출시
2009년 라데온 HD 5000 시리즈 출시
2010년 지포스 400 시리즈 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