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드는 처음 등장한 시점부터 지금까지 모습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키보드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타자기를 보더라도 요즘 키보드에 사용하는 QWERTY 배열이 그대로 적용돼있음을 알 수 있죠. 이런 모습을 획기적으로 변화하고자 몇 차례 시도가 있었지만, 키보드 배열에 관해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존재조차 알지 못할 만큼 실패한 시도입니다. 분명 더 효율적이고 문자를 입력하는데 편리하게 설계했음에도요. 이런 결과가 나온 데에는 새로운 것에 적응하기보다는 현재 익숙해져 있는 것을 선호하는 심리가 담겨있습니다. 당장 QWERTY 배열을 사용하면서 별다른 문제가 없는데 굳이 새로운 배열을 채택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죠.
이런 보수적인 흐름으로 인해 키보드에 인위적인 변화를 주는 건 큰 용기를 요구합니다. 시도하는 건 좋으나 도전이 곧 성공으로 이루어지리란 보장이 없기 때문일 텐데요. 마냥 딱딱해 보이는 키보드 시장이지만 기초적인 틀은 최대한 유지한 채 조금이라도 차별점을 보이고자 수많은 노력을 합니다. 그리고 스틸시리즈는 자신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OLED를 앞세워 차별화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스틸시리즈의 OLED를 접한 건 라이벌 700이었습니다. 좌클릭 옆에 작은 OLED가 있었는데, "과연 쓸모가 있는 기능일까?"라는 의구심이 들었죠. 이내 그저 커스터마이징을 위한 소소한 기능이라고 단정 지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이번 APEX 키보드를 다뤄보면서 그 생각이 매우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시중에 판매 중인 기계식 키보드 대부분은 커스터마이징을 하기 위해, 마치 코나미 커맨드처럼 정해진 단축키를 입력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Fn과 L을 눌러 LED 모드에 진입하고 Fn과 1, 2, 3을 눌러 RGB 색상을 지정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러나 APEX 7과 PRO는 이런 불편한 방법 대신 OLED를 통해 사용자가 어느 설정에서 어떤 값을 바꾸고 있는지 직관적으로 보여줍니다. 이점이 매우 편리했는데, 모름지기 RGB LED를 탑재한 게이밍 키보드라면 섬세한 LED 효과를 연출하기 위해서 소프트웨어를 제공해야만 한다고 여겨온 제 생각을 뜯어 고쳐줬을 정도입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APEX PRO에서 옴니포인트 스위치를 통해 다시 한번 특이점을 선사해줬습니다. 기계식 스위치 특유의 깔끔한 키감을 유지한 채 자석을 이용한 정전용량 방식을 채택하여 여러 장점을 갖췄습니다. 기존 물리적 접점이 있는 기계식 스위치보다 긴 기대 수명을 자랑하고, 입력 지점을 사용자 입맛에 맞게 조절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다른 키보드와 차별점이 한눈에 띄는 제품이지만, 칼럼 작성일 기준 가격이 267,000원으로 다소 비싼 편에 속합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스틸시리즈 기계식 스위치를 사용한 APEX 7의 가격이 189,000원이라는 점을 고려해보면 옴니포인트 스위치가 상당히 값비싸다는 점을 금세 알 수 있습니다. 과연 이 가격 차이가 제값을 할지는 사용자의 관점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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