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의 왕자에게 아내를 빼앗긴 사실에 크게 분노한 메넬라오스는 헬레네의 구혼자들에게 맹약을 지켜달라 요청하고 그리스 전역에서 맹약을 지키기 위해 영웅들이 모이게 됩니다. 그리고 메넬라오스의 형이자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을 맹주로 거대한 그리스 연합군이 결성되고 그리스의 침공에 대항해 트로이도 동맹군을 결성하면서 전쟁의 서막이 오르게 됩니다.
아킬레우스
한편, 테티스와 펠레우스의 결혼으로 이 둘 사이에서 아들 아킬레우스가 태어납니다. 신탁만 아니었더라도 제우스 같은 신과 결혼하여 후세 역시 신으로서 불멸의 삶을 살 게 되었을 텐데요. 인간인 펠레우스와 결혼하면서 아킬레우스는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되었죠. 엄마인 테티스는 아킬레우스에게 신과 같은 영생을 줄 수는 없지만, 다치지 않는 신체라도 주기 위해 '강물에서 목욕하면 어떤 무기도 뚫을 수 없는 강철 같은 신체로 만들어 준다'고 알려진 스틱스강(저승과 이승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강=요단강, 삼도천)에 아킬레우스를 담급니다.
스틱스강에 아킬레우스를 담그는 테티스 Thetis Immerses Son Achilles in Water of River Styx, Antoine Borel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 테티스가 잡고 있던 발목은 강물에 닿지 않았기 때문에, 발목이 아킬레우스의 약점으로 남게 되는데요. 실제로 사람이 서고 걷는데 핵심적인 힘줄이자, 치명적인 약점을 의미하는 아킬레스건이라는 단어가 여기에서 유래합니다.
케이론과 아킬레우스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아킬레우스의 아버지인 펠레우스는 켄타우로스의 현자이자 신화 속 영웅들의 스승(5)으로 잘 알려진 케이론에게 구해진 적이 있었는데요. 그 인연을 바탕으로 아킬레우스 친구인 파트로클로스와 함께 케이론 밑에서 교육받으며 영웅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5): 케이론의 제자 중 그리스 신화의 영웅은 아스클레피오스, 아리스타이오스, 아이아스 1세, 아이네이아스, 악타이온, 카이네우스, 아킬레우스, 이아손, 펠레우스, 텔라몬, 헤라클레스, 오일레우스 등이 있다.
전쟁을 회피하려 했던 두 남자
트로이 전쟁에 참전하지 않고 회피하려던 두 남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킬레우스와 오디세우스가 그들입니다.
오디세우스 두상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오디세우스(율리시스라고 불리기도 하며 오디세이아의 주인공)는 자신의 꾀로 헬레네의 구혼자들 모두를 참전하게 만들었던 문무를 겸비했던 인물입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이 전쟁에서 도망치기 위해 미친 척 연기를 하지만, 메넬라오스의 사촌 팔라메데스에게 걸려 전쟁에 참전하게 됩니다.(자신을 전쟁터로 내몬 팔라메데스를 용서할 수 없었던 오디세우스는 꾀를 내어 팔라메데스에게 뇌물 수수 및 적과 내통 혐의를 씌워 아가멤논에게 죽게 만듭니다)
그리고 아킬레우스의 어머니인 테티스는 아들의 운명에 대한 신탁을 받게 됩니다. 아킬레우스가 트로이 전쟁에 참전하면 요절하지만 영웅으로서 불멸의 이름을 얻게 될 것이고, 참전하지 않으면 평범하지만 행복하게 오래 살 것이라는 신탁을 받은 것이죠. 어머니로서 테티스는 아킬레우스를 사지로 내몰 수 없었습니다. 아들을 살리고 싶었던 그녀는 아킬레우스를 여장 시켜 리코메데스 왕의 궁에 숨깁니다. 이 기간에 아킬레우스는 리코메데스 왕의 딸들과 지내며 첫째 공주인 데이다메이아와 사랑에 빠지고 아들을 낳기도 하죠.
하지만 그리스의 예언자 칼카스는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반드시 아킬레우스가 필요하다고 예언합니다. 전쟁에 참여하지 않으려 했던 자 오디세우스가 도리어 이번에는 아킬레우스를 전쟁에 참전시키기 위해 리코메데스 왕궁을 찾아갑니다. 그런데 아킬레우스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리코메데스의 딸들 뿐이었죠.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반드시 아킬레우스가 필요했기에 아킬레우스를 찾기 위한 꾀를 냅니다.
리코메데스의 딸들 사이에서 칼을 집어들어 발각되는 아킬레우스 The Discovery of Achilles among the Daughters of Lycomedes: Jan de Bray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오디세우스는 리코메데스의 딸들에게 금은보화를 선물하고 곧이어 적군의 침입을 경보하는 나팔 소리를 울리게 하는데요. 적군의 침입이라 생각한 아킬레우스가 리코메데스의 딸들을 보호하기 위해 무기를 들게 되면서 여장을 걸리게 되고, 트로이 전쟁에 합류하게 됩니다.
아킬레우스의 분노 I - 브리세이스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호메로스는 아킬레우스의 분노에 대해 서술하며 일리아스의 첫 페이지를 시작합니다. 트로이 전쟁은 10년 동안 치렀다고 알려졌는데요.(일리아스에서는 며칠 남짓의 사건만을 다루고 있습니다) 트로이 전쟁이 무려 10년이나 지속된 데에는 트로이의 성벽을 포세이돈과 아폴론이 지었기 때문입니다. 신이 지은 성벽의 견고함은 인간이 뚫기에 난공불락의 요새였고, 이 때문에 아가멤논이 지휘하는 그리스군은 트로이를 공략하면서도 주변 지역을 광범위하게 약탈했습니다. 자신들의 영토로부터 배를 통해 넘어왔기 때문에 물자 수송의 어려움도 있었고 삼국지를 보더라도 약탈을 통한 병량과 물품의 현지 조달 및 견고한 성을 고립시키는 것은 전쟁에서 일반적인 전술이었습니다. 약탈한 전리품의 분배는 왕과 큰 공로를 세운 장군들의 차지였는데요. 그리스군의 맹주 아가멤논은 아폴론 신전의 사제 크리세스의 딸 크리세이스를 가졌고 아킬레우스는 리르네소스라는 도시를 침공하여 학살한 뒤 브리세이스(리르네소스의 왕비로 추정)를 전리품으로 얻습니다.
아가멤논을 찾아와 크리세이스를 돌려 줄 것을 간청하는 크리세스, 토기 그림 [이미지 출처:위키백과]
아폴론의 사제 크리세스는 아가멤논을 찾아와 딸 크리세이스를 돌려주는 대신 많은 몸값을 지불하려 합니다만, 아가멤논은 그런 크리세스를 모욕하며 돌려보냅니다. 이에 화가 난 크리세스는 자신이 모시는 아폴론에게 복수를 부탁하는 기도를 드리고, 아폴론은 역병의 화살을 날려 그리스군 진영에는 역병이 창궐합니다.
역병이 돌자 아킬레우스는 아가멤논에게 사제나 예언자에게 병의 원인을 묻자며 권하고, 예언자 칼카스는 이 역병은 아폴론이 내린 재앙이며 크리세이스를 돌려주어야 끝이 난다고 답합니다. 아가멤논은 크리세이스를 돌려주는 대신 손해를 보상해줄 수 있는 명예로운 자의 선물을 요구하는데요. 이 말인즉슨 크리세이스를 보낼 테니 대신 아킬레우스가 취한 브리세이스를 자신에게 달라는 의미였습니다.
아가멤논은 아킬레우스의 막사에서 브리세이스를 뺏어간다. 작가: Johann Heinrich Tischbein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이것은 단순히 전쟁 노예의 소유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노동을 하면 급여로 보상받듯이, 당시에는 목숨을 걸고 전투를 치르면 전리품을 얻게 되고, 이것은 자신이 목숨을 걸어 쟁취한 자랑스럽고 명예로운 보상이었습니다. 심지어 아킬레우스는 브리세이스를 단순한 전리품이나 노예가 아닌 첩으로 받아들였는데요. 아가멤논의 이 행위는 그리스군에서 아킬레우스의 명예를 갈취하는 동시에 아내까지 빼앗아가는 처사였던 것이죠. 아킬레우스는 아가멤논에게 크게 분노하고, 아가멤논을 위한 어떤 전투도 참전하지 않겠다며 이탈하게 됩니다. 그리스군의 선두에서 연전연승하던 영웅 아킬레우스가 전투에 불참하자, 트로이군의 전쟁 영웅, 트로이의 첫째 왕자 헥토르의 위력(6) 앞에 전황이 뒤집히게 됩니다. (6): 헥토르의 무력도 무력이지만, 군 규모가 몇 배 이상으로 엄청나게 차이가 났던 상황에서 수성이 아닌 전장으로 나아가 연전연승한 것은 헥토르의 통솔력, 전술, 전략 등 지휘관으로서 면모 또한 뛰어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황이 불리해지자 아가멤논은 뒤늦게 사과하며 자신이 브리세이스를 욕보이지 않았음을 신께 맹세한 뒤 돌려보내고, 아킬레우스와 친분이 있던 오디세우스, 아이아스, 포이닉스를 사절로 보내 전쟁에 참여할 것을 요청하지만, 아킬레우스는 무기 대신 악기를 들며 답을 대신한다. 아가멤논이 브리세이스를 뺏은 것은 찌질했지만 그럼에도 그냥 죽여도 되는 그 시대에 그 어떤 왕이라도 이 이상의 사과를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전우의 죽음을 방관하며 전투에 불참한 아킬레우스도 선을 넘었다.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아킬레우스의 분노 II - 파트로클로스
한편 이 전쟁의 원인 제공자이자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전장 한가운데로 나와 자신과 담판을 지을 용맹한 전사는 나오라며 객기를 부리다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헬레네의 전남편인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와 일기토에서 패배하고 여신 아프로디테(파리스가 가장 아름다운 여신으로 선정)에 의해 겨우 목숨을 건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전세는 헥토르가 이끄는 트로이군이 유리했습니다. 잠시나마 아가멤논이 활약하며 트로이군을 밀어내기도 하지만 전투에서 부상당하며 후퇴하게 됩니다. 아킬레우스의 불참과 아가멤논의 부상으로 그리스군의 사기는 떨어질 대로 떨어졌고 연이은 패배와 함께 전선은 계속 밀리며, 이제 도망칠 곳도 없는 함선이 있는 해변 앞까지 오게 됩니다.
패배가 눈 앞에 닥치자 어릴 적부터 아킬레우스와 함께해온 친구이자 현자 케이론 밑에서 함께 수학한 동료, 전장을 함께 누빈 전우이자 애인으로까지 묘사되는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우스에게 울면서 설득해보지만, 아가멤논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찬 아킬레우스는 끝끝내 참전을 거부합니다. 아킬레우스의 불참 의지가 확고하자, 파트로클로스는 대신 그의 병력들과 갑옷을 빌려달라고 부탁합니다. 친우의 부탁을 또다시 거절할 수 없었던 아킬레우스는 갑옷을 빌려주며 함선 앞 전선에서 트로이군을 격퇴하면 더는 추격하지 말 것을 당부합니다.
파트로클로스의 팔에 붕대를 감아주는 아킬레우스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와 함께 수많은 영웅을 가르쳤던 케이론의 제자답게 전장에서 엄청난 활약을 보입니다. 아킬레우스의 갑옷은 전설적인 대장장이 헤파이스토스(7)가 제작하여 유니크한 것이었는데요.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입고 싸우는 파트로클로스를 본 그리스군과 트로이군은 아킬레우스가 전투에 다시 참전한 것으로 생각할 정도로 빼어났고, 이는 곧 군의 사기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지만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의 당부를 잊은 채 트로이군을 향해 계속해서 공격했습니다. (7): 제우스와 헤라 사이의 아들로 부부싸움 중 헤라 편을 들어 제우스에게 걷어차이며 올림푸스에서 추락한다. 이때 보살펴 준 이가 아킬레우스의 어머니 테티스. 이 인연으로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제작해준다.
그동안 아킬레우스에게 가려졌었지만 파트로클로스의 위용 역시 대단했습니다. 헥토르의 부관 케브리오네를 죽이고 심지어 제우스의 자손 중 한 명이자 트로이에서 헥토르, 아이네이아스와 함께 최정예 장군이라 할 수 있는 사르페돈의 심장을 창으로 꿰뚫으며 아킬레우스 못지않은 활약을 펼칩니다.
이윽고 트로이 성벽까지 공략을 시도하지만, 태양신 아폴론에게 3번이나 저지당하며 부상을 입게되고, 아폴론에 맞서는 동안 트로이의 장수 에우포르보스에게 기습을 받게 됩니다. 신에게 공격당하며 부상당했던 파트로클로스는 트로이 최고의 장군이자 왕자인 헥토르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헥토르는 아킬레우스를 죽인 것으로 생각했지만 갑옷을 벗겨보니 아킬레우스가 아닌 파트로클로스였고, 그는 죽어가며 헥토르에게 아킬레우스가 널 죽일 것이라는 저주를 남깁니다.
파트로클로스의 시체를 두고 전투를 벌이는 그리스군과 트로이군. 시체를 빼앗아 장례를 치르지 못하게 하는 것은 죽어서 저승도 가지 못하게 막는 잔인한 행위였습니다.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헥토르는 파트로클로스에게서 벗겨낸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자신이 입고 더욱더 그리스군을 몰아칩니다. 이에 메넬라오스(파리스에게 헬레네를 뺏긴 스파르타의 왕)는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을 아킬레우스에게 알리라 명령한 뒤 자신이 직접 파트로클로스의 시체를 수습해옵니다.
파트로클로스의 시신을 안고있는 메넬라오스 [이미지 출처:위키백과]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을 전해 들은 아킬레우스는 분노와 슬픔으로 가득 찬 채 전장으로 향합니다.
vs. 헥토르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으로 인해 아가멤논을 먼저 찾아가 화해하고 그리스군은 아킬레우스를 따르게 됩니다. 한편 제우스는 아킬레우스가 운명을 넘어 곧바로 트로이를 함락할 것을 우려하여 신들의 적극적인 개입을 허용하는데요. 이에 아폴론은 아이네이스를 부추겨 아킬레우스에게 맞서게 하고, 아이네이스가 위험해지자 포세이돈이 구해주는 등 아킬레우스를 방해합니다. 그리고 헥토르 역시 아킬레우스에게 맞서는데요. 첫 번째 대결에서는 아킬레우스에게 죽임을 당할 뻔한 위기를 맞지만 아폴론의 도움으로 겨우 목숨을 건지게 됩니다. 하지만 아킬레우스 역시 전쟁에 도가 튼 영웅이었죠. 헥토르의 패배로 도망치는 트로이군을 쫓으며 학살을 시작합니다. 트로이 성문까지 트로이군을 쫓으며 닥치는 대로 잡아 죽인 아킬레우스는 친우 파트로클로스의 장례에 제물로 바치기 위해 트로이의 젊은이 12명을 잡아 와 순장시키기도 합니다.
아킬레우스의 복귀로 수세에 몰린 트로이군은 성문 안으로 모두 후퇴하였는데요. 신이 세운 튼튼한 성벽을 바탕으로 농성전을 해야 맞겠지만, 여기서 헥토르는 아쉬운 선택을 하게 됩니다. 바로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성문 앞으로 나가 아킬레우스를 기다린 것이죠. 헥토르가 나간 것은 신의 농간일 수도 있고 지난 참패를 설욕하기 위함일 수도 있습니다만, 일개 장수라면 모를까 트로이군을 대표하며 무력과 지략, 인품 등 어느 하나 부족한 것이 없고 가족을 위한 헌신 등 고대 그리스 시대뿐만 아니라 중세까지도 완벽한 영웅으로 추앙받는 헥토르이기에 이 선택은 더욱 아쉬웠습니다. 어찌 되었든 헥토르는 아킬레우스를 마주하며 다시 한번 전투를 치르는데요. 영화 트로이(2004년)를 보면 이 둘의 전투가 흥미롭게 그려집니다.(다만 일리아스와 전쟁 양상이나 인물 등 원작과 다른 부분 많기 때문에 영화만 보는 것은 잘못된 정보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두 영웅은 서로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나 아테나의 속임수(파리스의 선택으로 트로이 대신 그리스 편에 섬)에 헥토르가 속으면서 창과 창의 싸움이 아닌 창과 칼의 싸움이 되었고 아킬레우스의 창에 목이 꿰뚫리며 죽음을 맞이합니다.
아킬레우스와 헥토르의 일전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헥토르의 시체를 전차에 매달아 끌고 가는 아킬레우스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시신을 전차에 매달고 트로이 성벽 위의 사람들이 모두 볼 수 있게 성 주변을 선회하며 시체를 유린한 뒤 장례도 치르지 못하도록 그리스군의 진영으로 끌고 갑니다.
※ 이 당시에는 장례를 치르지 못하면 영혼이 스틱스강을 건너지 못해 안식을 취하지 못한다고 믿었습니다. 트로이군과 그리스군이 파트로클로스의 시신을 두고 전투를 벌였었기에 이에 대한 복수이기도 했습니다.
장남 헥토르를 아끼고 사랑했던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는 헥토르의 죽음과 죽어서도 유린당하는 아들의 모습에 큰 충격을 받습니다. 그는 아들의 시신이라도 수습하기 위해 제우스의 도움과 헤르메스의 안내를 받으며 아킬레우스를 찾아가는데요. 그리스군 진영의 최고 영웅의 막사까지 위험을 무릅쓰고 찾아와서, 아들을 죽인 원수에게 노잣돈이라도 올릴 수 있게 해달라고 울며 사정하는 상대 진영의 왕 프리아모스의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고, 아킬레우스는 신탁에 따라 자신도 단명하고 슬퍼할 자신의 부모님을 떠올렸는지 프리아모스에게 감화되어 헥토르의 시체를 인도합니다.
아킬레우스를 찾아가 간청하는 프리아모스 왕 [이미지 출처:위키백과]
그리고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장례 기간 전쟁을 멈출 것을 약속하고 프리아모스 왕은 헥토르를 데려가 장례를 치르게 됩니다. 이로써 아킬레우스의 분노로 첫 문장을 시작한 일리아스는 아킬레우스의 감화로 맺음을 하게 됩니다. (호메로스의 의도가 삽입된 사건 구성이라고 볼 수 있으며, 아킬레우스의 죽음이나 트로이 목마는 일리아스에서 등장하지 않습니다)
일리아스 이후 이야기 아킬레우스의 죽음
일리아스 이후(헥토르의 12일간 장례식 이후) 트로이 전쟁의 양상은 트로이의 버팀목이었던 헥토르가 사망하면서 트로이에 불리해집니다. 사실 군 규모에서 몇 배 이상의 차이를 헥토르가 자신의 역량만으로 그리스군을 압박해왔었기 때문에 헥토르의 죽음은 트로이군에게 희망의 등불이 꺼진 것과도 같았습니다. 아킬레우스는 트로이 최강의 영웅이었던 헥토르를 죽인 이후에도 트로이를 도우러 온 주변국의 왕과 아마존의 여왕(8), 장군들을 도륙하며 트로이 전쟁 최강의 영웅으로 입지를 확고히 하게 되는데요. 하지만 여기서 아킬레우스는 뼈아픈 실책을 범하게 됩니다. 헥토르의 무덤 앞에서 통곡하는 헥토르의 여동생, 트로이의 공주 폴릭세네를 보고 사랑에 빠진 것입니다. 아킬레우스는 폴릭세네에게 트로이와 그리스의 화합을 약속하지만, 트로이의 영웅이자 차기 왕권을 물려받았을 자신의 오빠 헥토르를 유린했던 아킬레우스를 용서할 수 없었고 파리스에게 이 사실을 알립니다. 아폴론의 신탁으로 아킬레우스의 약점이 발목이란 것을 알게 된 파리스는 폴릭세네를 만나러 온 아킬레우스의 발목에 독화살을 쏘아 죽이게 됩니다. (8): 아마존의 여왕 펜테실레이아(Penthesilea)를 죽인 뒤 투구와 갑옷을 벗겨보니 시신이 너무 아름다워 아킬레우스가 반했다는 설이 있다. 네크로필리아(Necrophilia)
아킬레우스 부모님의 결혼식과 근처에서 양을 치던 파리스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촉발된 트로이의 전쟁에서 자신을 막아선 모든 적을 압도했던 위대한 전쟁 영웅 아킬레우스는 아내의 전남편과 일대일 싸움조차 패배한 뒤 여신의 도움으로 겨우 도망쳐 침실에서 한동안 숨어지냈던 파리스의 독화살에 의해 허망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Peter Paul Rubens: The Death of Achilles [이미지 출처:위키백과]
트로이의 목마
트로이군은 헥토르를 잃었음에도 신이 만든 트로이의 성벽은 견고했고 그리스군의 공성전은 성과를 거두지 못합니다. 이에 오디세우스는 다시 한번 꾀를 냅니다. 전쟁과 지혜, 정의의 여신 아테나에게 제물로 바친다는 명목으로 병력이 숨을 수 있는 거대한 목마를 만들고 제를 올린 뒤 거대한 목마만 남긴 채 퇴각합니다.
영화 트로이(2004)에서 사용된 트로이 목마 레플리카, Replica of Trojan Horse-Canakkale Waterfront-Dardanelles-Turkey, 작가 Adam Jones (21 May 2011, 05:31) [이미지 출처: 위키미디어]
거대한 목마 상을 본 트로이군과 시민은 환호하는데요. 이 제물을 불태우자는 주장(9)도 있었지만, 이 목마를 들여와 제를 지내야 한다는 제사장의 의견에 따라 그 유명한 트로이의 목마가 성문 안으로 무혈입성하게 됩니다. (9): 헥토르의 여동생 카산드라. 예언 능력을 지녔으나, 아폴론의 청혼을 거부한 뒤 아무도 그 예언을 믿지 않게 되는 저주에 걸린다. 파리스를 스파르타로 보내면 안 된다부터 트로이의 목마까지 트로이를 구하기 위한 예언을 남겼으나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카산드라 콤플렉스가 여기서 파생.
Giovanni Domenico Tiepolo - The Procession of the Trojan Horse in Troy[이미지 출처:위키미디어]
그리고 모두 잠든 깊은 밤이 되자 목마 상에서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와 오디세우스 등 그리스군의 정예병사들이 나와 성문을 열고, 그리스군 본진이 트로이를 침략하며 트로이는 몰락하게 됩니다.
불타고 있는 트로이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전쟁의 종식, 오디세이아로~
멀리서 보면 흥미로운 점이 있는데요. 여장한 아킬레우스를 트로이 전쟁에 참전시킨 것도,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의 불화를 중재하는 것도, 아킬레우스가 죽은 뒤 트로이 목마를 건설해 트로이를 무너뜨리는 것도 모두 오디세우스의 역할이었다는 점입니다. 트로이 전쟁이 종식된 뒤 오디세우스는 어떤 보상을 받았을까요?
오디세우스가 최초에 미친 척하며 트로이 전쟁에 불참하려던 이유는 트로이 전쟁에 참여하면 몇십 년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유랑생활을 하게 된다는 신탁을 받았기 때문인데요. 트로이 전쟁 후 고향으로 돌아가는 오디세우스의 여정을 그린 서사시가 바로 일리아스와 함께 호메로스의 대서사시로 널리 알려진 오디세이아입니다.
지금까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토대로 트로이 전쟁을 간략히 살펴보았습니다. 8월 14일 토탈 워 사가: 트로이 출시일에 잊지 마시고 꼭 무료 등록을 하시고요.[바로 가기] 토탈 워 사가: 트로이를 즐기시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게임도 역시 퀘이사존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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